육아의 고됨은 여러 가지 면면이 있을 것이다. 수시로 안아주고 따라다녀야 하는 육체적인 고됨,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울고 짜증 내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정신적인 고됨, 장난감과 책 등으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며 놀아줘야 하는 서비스적인 고됨. 하지만 이 모든 것 보다 괴로운 것은 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육아에 가사까지 100% 나의 책임이 되는 전업맘이 되다 보니 아이 보는 것과 갖가지 집안일을 하다 보면 내가 휴직 동안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의 규칙과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일단 5시에 일어날 것. 5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운동을 하고, 책을 읽거나 공부, 그리고 집안 정리 및 아침 준비. 아이를 세시반에 하원 시키며 오전과 낮 동안 밖에서 볼 일을 보니 여유가 넘치지는 않아도 딱 내 할 일 하며 집안일 육아까지 꾸려갈 수 있었다.
신경 써서 먹이고 돌보니 아이도 점점 밥양이 늘었고 살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서인지 어린이집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활발하고 재밌게 논다고 선생님도 말씀하신다. 남편도 이제야 집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아이가 덜컥 감기에 걸렸다.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 전형적인 감기. 그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기침에 수시로 깨는 아이를 달래느라 5시에 일어날 수 없었다. 아이가 등원을 하지 않으니 집안일을 할 시간이 모자랐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손으로 하나하나 눌러쓴 나의 일주일 스케줄들은 모두 날아갔다. 친구들과의 브런치, 어린이집 엄마와의 커피, 도서관 책 반납, 부모교육 특강 등등... 감기로 입맛이 떨어진 아이는 다시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한 나는 잔뜩 날이 서있는 채로 남편을 대했고 그러다 보니 싸움도 잦아졌다. 일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고정적인 나의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집에서 어떤 푸닥거리를 하고 오건 일단 사무실 내 자리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이가 아파도 하루 이틀 휴가를 내고 오면 다시 내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커피가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화장실을 가는 것도,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도 수고가 따른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여지없이 따라와 내 무릎에 앉아 비데 버튼을 눌러보는 아이 때문에 계속 '정지' 버튼을 눌러야 하고, 커피를 마실 때도 '이거 아 매워야. 아 매워~' 아이가 달라고 떼쓰지 않기를 바라며 후다닥 마셔 버린다. 유일한 휴식시간인 낮잠 시간은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그래서였던 것 같다. 휴직 후 아이의 첫 감기가 유난히 힘들었던 건. 내가 집에 있으니 아이 감기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약 없이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고, 하루 종일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은 보장받을 수 없는 것. 내가 세워놓은 스케줄들을 가차 없이 모조리 취소해야 하는 것. 그것이 3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소중한 브런치 약속 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감기가 한 풀 꺾여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어린이집도 오전에 잠깐씩 보내고, 밥도 다시 잘 먹고,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여유가 생기고. 이번 폭풍을 겪으며 한 가지 배운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집이 조금 엉망이어도, 밥을 제대로 못 챙겨도, 해야 할 일들을 좀 못해도 그냥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내 눈앞의 아이와의 시간에만 집중할 것. 내려놓지 않으면 속에 쌓이고 쌓여 언제 폭발할지 못하는 화산이 생기고 그 화산은 내가 ‘이 모든게 너 때문이야’ 라고 분풀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폭발하게 된다 (대부분 남편...).
애를 놓고 만나기로 한 친구들과의 브런치는 결국 주말 가족모임으로 바뀌었고, 3명이 보기로 했던 것이 11명의 대가족 모임으로 바뀌었다. 그래, 통제되지 않는 삶이 이렇게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 거지.
어린이집에서 또 구내염 확진 아동이 생겼다는 공지를 띄웠다. 젠장... 또 등원 못하겠네. 다시 전쟁 시작이다. 2차전은 좀 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