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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Aug 15. 2019

휴직맘, 미국 주식을 시작하다.

'남편의 세상으로 들어가보기' 속편

그래서, 남편의 세상 속에는 내가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몇 개의 주제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된건 주식시장이다.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있는 남편이 링크를 하나 보내더니 미국주식 투자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들어보니 전직 애널리스트로 퇴직을 하고 요리와 재테크에 대해 영상을 올리는 여자분이었다. 이 영상을 참고로 (남편은 시간이 없으니) 미국 주식 종목을 리스트업하고 분석하면서 투자할 곳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 여자분은 우리 (한국인 주식 초보, 안정 선호)가 투자하기 적절한 산업에 있는 회사 중 몇 가지 criteria를 정해 거기에 맞는 회사에 투자하라 라는 주장인데, 그 산업이 Tech 인 것이다. 내가 이 산업에 있기도 하고, 주식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너의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뭐 이런 논리로 같이 하자고 한 것 같다.

  

영상이 워낙 재미있고 솔깃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 아이를 재워놓고 당장 작업에 착수했다. 오랜만에 엑셀을 켜고, 재무제표에서 숫자를 따오고, 스프레드시트를 채워가는 일이 참 재미있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전제: Next Big Thing은 일단 DATA이다. (이건 투자 트렌드를 보나, 구루들의 발언, 각종 보고서를 봐도 명확한 듯하다)

1. 40의 법칙: 매출 증가율과 이익률 (영업이익 또는 현금흐름 이익률)의 합이 40 이상이 되는 회사

2. 그 산업 내에서 독보적 위치를 가진 회사 (data 내에서도 많은 세부 산업이 있다)

3. 그밖에 콘퍼런스 콜에서의 대표의 태도, 주주구성, 현금 보유량 등

(출처: Youtube 'happycooking120180' 님의 동영상 중)


1,3과 같은 경우는 비교적 명확한데 2번을 찾는 것이 좀 어려웠다. 내가 테크 산업에 있다고는 하지만 '투자'라는 특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실제 개발자들, data scientist들이 이 툴을 어떻게 보는지, 그 사업이 돋보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나름 리서치를 통해 괜찮다고 생각하는 회사를 골랐고, 남편은 그 회사의 주식을 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국 시장이 개장하는 밤 10시 반이 가까워져 올 때면 앱을 켰다 껐다 하며 프리 마켓은 어떤지, 새로운 뉴스는 없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새벽에 자다 문득 눈을 떠도 앱을 켜서 주식이 어떻게 되고 있나 계속 확인해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연스레 전업 투자자들이 어떻게 종목을 분석하는지 글들을 찾아 읽게 되고, 이 회사 제품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커뮤니티에 검색해 보게 되었다. 테크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혹시 이 회사 제품은 써봤는지 물어보고, 남 일 같았던 미중 무역 갈등과 트럼프의 트윗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아주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안경을 안 쓰면 코앞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새벽에 깨서는 눈 바로 앞에 폰을 갖다 대고는 곧 다시 내려놓고 잠이 들었다. 내가 아이와 거실에서 놀고 있을 때도 시끄럽게 유튜브를 켜놓고 정치, 경제 영상을 보기 일쑤였다. '아 그걸 지금 꼭 봐야 해? 저녁에는 가족끼리 집중 하는 시간 좀 갖자' 내가 타박을 주면 말없이 폰을 들고 안방으로 가는 남편이었다. 퇴근해서 무슨 얘기 좀 하려고 하면 '아 오늘은 안돼. 이거 장 열리자마자 팔아야 해. 말 걸지 마.'라고 하는 남편을 향해 입을 내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매수/매도 주문을 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J, 근데 주식은 해?'


회사에서 처음 상사를 만났을 때,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안 하는데요'.


상사 개인의 관심사인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주식시장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상사는 가끔씩 '주식시장을 잘 알아야 해'라는 뉘앙스의 말을 던져왔다. 실제로 주식을 하지 않아 남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나는 검색을 통해 습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에 큰 지장은 주지 않았지만, 내가 주식을 했더라면 일에 도움이 더 많이 되었고, 나도 일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 모든 남자 직원들은 주식을 하고, 여자 직원들은 한 명도 주식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순전히 재테크 정보 교환만을 위한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고, 단카방도 주식, 부동산, 바이오 등등 주제마다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도, 직장 동료들을 만나도 대화의 반은 재테크 얘기가 주제인 듯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던 나도 친구들과  재테크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도 아이 엄마가 되면서는 어떤 여자 지인을 만나도 대화의 90%가 육아 이야기, 10% 정도가 그 밖의 이야기이다.

 



미국주식을 시작한 후 남편은 가끔 주식 시장에 대해, 자신의 투자 히스토리에 대해 얘기해 주곤한다. 사회 초년생 시절 매도 주문을 잘못 내 너무 많은 주식을 사버려서 후달렸던 기억. 10상 (10일 연속 상한가)의 짜릿함을 맛본 기억. 전고점 돌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미국주식시장이 한국과는 어떤점이 다른지 등등.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종목의 수익률을 비교해 보며 시장이 어떻게 될지, 내가 언제쯤 다음 종목을 발굴해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내가 바래왔던 부부간의 대화는 아니지만 뭐 이렇게 내 세상도 넓어져 가는가 보다 싶다. 이 와중에 이상주의자 나는 '혹시 내가 투자에 재능을 보여 나중에 전업투자자가 되는거 아냐? 그럼 미국에서 애 키우며 투자로 돈벌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을 꿔본다. 이 상상은 내 맘 속에만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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