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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Oct 17. 2019

휴직 4개월 차.

나에게 생긴 변화들 

바로 오늘, 내가 집안에 들어앉은 지 딱 4개월이다. 아이 출산 때를 포함,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쉬어본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생겼는지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1. 아이 

휴직의 가장 큰 이유였던 체구 하위 3%를 밑돌던 우리 아들. 휴직하자마자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한의원을 찾아가 한약을 지어 먹이고, 한의원에서 추천해 주는 식이요법을 90% 이상 지켰다. 먹이면 안 되는 간식 (밀가루 등)이 나오는 날을 체크해 간식 시간을 피해 등 하원을 시키고, 돼지고기 육수를 내 국을 끓이고, 소화가 쉽도록 모든 음식을 잘게 잘게 다져서 먹였다. 감기가 걸리면 뱃속이 뒤집어진다 하여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집에서 쉬게 했다. 덕분에 아들은 매 달 의무일수 12일을 간신히 채워가며 어린이 집을 다녔다. 노력이 통했던 걸까. 휴직 3개월 만에 아들의 몸무게가 1kg이 늘었다. 처음으로 몸무게가 두 자릿수가 되던 날,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 사이 머리도 훌쩍 커진 아이는 이제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듣고, 튼튼해진 두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신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 껌딱지가 된 건 덤이다. 


2. 남편과 집안일 

이게 휴직 전에도 참 고민이었다. 둘 다 일을 할 때에는 내가 집안일을 좀 덜해도, 아이 육아를 좀 소홀히 해도 '나도 일하는데 당신이 좀 하지?'라는 든든한 논리가 있었는데, 내가 집에 있으면 이 주장은 더 이상 안 통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집에 있는 내가 더 많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육아는 부부 공동의 일이고 남편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한다는 바른말이 통용되는 시대지만, 실제 내가 돈을 안 벌고 집에 있어 보니 마음에 약간의 부채의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나도 집안일에 더 관심이 가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저절로 육아도 느는 것. 그리고 내가 그렇게 집안일을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역시 해봐야 안다. 


3. 평일 낮 시간 

휴직을 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엄마 친구들 만나기. 일을 할 때는 주중에 약속 잡는 건 불가능, 주말에도 누구를 따로 만나기가 참 버거운 일이었다. 휴직을 하고 나니 평일이든, 주말이든 편하게 아이와 함께 또는 아이를 놓고 엄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가는 놀이터에서 자주 보는 친구를 사귀어 서로의 집에도 오가고, 아이를 키우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 밀려둔 수다도 한 껏 떨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은 일하는 시간에 나는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처음의 짜릿한 기분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마음이 설레는 시간이다. 


4. 일 그리고 회사 

이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일과 회사에서 점점 마음이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휴직 초기에는 자주 회사 인트라 넷에 들어가 무슨 공지 사항이 떴나 확인이라도 하던 것이, 이제는 카톡으로 푸시를 보내주어도 겨우 들여다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회사 인사 평가 체제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나는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나의 레벨이 정해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개인별로 기대하는 역할과 평가 기준이 되는 레벨을 정해주는 것이었는데 나의 레벨은 'leader'였다. 나의 연차나 해온 일을 보았을 때 예상했던 결과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리더를 해야 한다고?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이만큼은 써먹어야 이해타산이 맞을 테니 당연할 테지만 '휴직을 좀 더 연장해야 하나, 단축근무를 신청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리고 휴직 시간과 비례하여 커지는 일에 대한 소심함도 한 몫하는 듯하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한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에서 운전을 막무가내로 혹은 잘 못하는 차를 보면 으레 '김여사'라고 추측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었는데, 여자들이 계속 집에서 아이와 남편만 바라보며 생활하게 되면 주변이 점점 안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김여사는 잘못된 말이다). 남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고 그들을 고려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는데, 여자는 오로지 아이와 내 가족만 보다 보니 주변에 무신경 해진다는 것.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에 집중된 생활을 하다 보니 벌써부터 애가 초등학교에 가면... 중학교 가면... 이런 10년은 더 있어야 올 일을 머리에 그리며 이사는 어디로 할지, 어떤 교육을 받게 할지를 찾아보다가는 정신줄을 잡고 현실로 돌아온다. 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오늘 저녁에 먹을 국이나 끓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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