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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Oct 04. 2019

내가 즐겁게 사는 법

이런 걸 소확행이라고 하나요.

'어머님 J는 먹고 싶은 거 해보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가 봐요. 애 같아요 허허허.' 


'응 쟤 원래 그래~ 뭐 하고 싶다 그러면 그냥 그러냐고 넘기면 돼~' 


신혼 초에 남편이 친정 엄마랑 나눈 얘기다. 내가 티브이에 나오는 음식을 보고 호들갑 떨며 저걸 꼭 먹어봐야겠다고 얘기하던 중 이었던 것 같다. 완연한 30대 중반이 된 나는 지금도 가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참 많다. 그리고 이 '하고 싶은 것'들이 내 삶에 즐거움과 활력을 넣어주고 있다. 


엄청난 것들을 해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손쉽게 할 수 있고, 사실 매일 할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거기에 기대를 한껏 넣는 것이다. 어제는 청계산을 갔다가 굴다리 아래 작은 장이 열리는 곳에서 2000원짜리 강냉이를 한 봉지 사 왔다. 10년 차 강냉이 전문가로서 딱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전문적으로 강냉이를 튀겨 주는 곳보다, 이런 장에서 파는 강냉이가 맛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일 오전 아이를 등원시킨 후, 집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맛있는 커피와 함께 강냉이를 먹어야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일이다. 


내일은 가족이 다 같이 제주도로 떠나는데, 나는 일주일 전부터 중문 관광단지 안의 스타벅스와 풀사이드바에서 시켜먹는 치킨을 기대 중이다. 아침을 먹고 슬슬 걸어 나가 햇살 가득한 스타벅스 안에서 마시는 맛있는 커피 한잔 (제주도에서만 판다는 음료를 먹어야 하나 아님 그냥 마시던 커피를 마셔야 하나 고민 중이다). 아이와 신나게 물놀이를 한판 하고 나와 가운만 슬쩍 걸친 채 먹는 바삭한 치킨. 치킨 속살을 아이에게 뜯어 주면 잘 먹겠지? 이런 상상으로 제주도 여행을 하기도 전부터 나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기분 좋은 일들을 만들어 놓고 기대를 하는 것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혹시 그 일을 못하게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 꼭 가야 하는 곳,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을 고집하다 보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작 내가 그걸 하는 이유 (=즐겁기 위해)를 잃어버리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결국 원하던 것을 하더라도 나 혹은 함께 하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게 된다. 내가 산 강냉이가 생각보다 맛이 없더라도, 혹은 아이가 등원을 하지 못해 나만의 커피&강냉이 타임이 없더라도 나는 그리 기분이 상하지 않고, 아이와 강냉이를 나눠 먹으며 즐겁게 놀 것이다. 아이가 떼를 써서 스타벅스에 가지 못하더라도 인스턴트커피 하나를 물에 타마시며 '오늘의 카페인은 섭취했으니 신나게 놀아보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삶의 스트레스는 입으로 나열하기 귀찮을 만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회사, 사람, 돈, (남편), 복직, 휴직, 커리어, 뱃살... 사랑스러운 아들조차 행복과 함께 고됨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그걸 기대하는 일이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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