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ale Dominant Workplace
내가 일하고 있는 투자, M&A 쪽은 남자들이 많다. 우리 팀에 남자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업무 관련하여 만나게 되는 사람들 거의 모두 남자다. 미팅에 들어가 보면 나 혼자 여자인 경우가 태반이고, 가끔 자문사 쪽에서 여자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럼 괜히 반갑다.
이런 남자들을 만나봤다.
(주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임.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글로벌 IB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 스탠리, 시티은행 등 한 번쯤 들어본 글로벌 뱅크의 IB, Equity 팀
첫인상이 일단 말쑥하다. 정장 차림에 폰 (아직도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항상 이멜을 체크를 하고 있음. 유학생 출신, 글로벌 펌 근무 경험을 갖고 있어 영어/한국어 자유롭게 구사. 어떤 질문을 해도 어떻게든 답변을 만들어 냄. 주니어들은 각이 바짝 잡혀있지만 시니어로 갈수록 농담따먹기 잘하고, 사교적으로 변함. 미팅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음.
PE
KKR, TPG, Affinity 같은 외국계 PE도 있고, MBK, 앵커, BRV 같은 국내 PE도 있음.
이 분들 역시 말쑥하다. 하지만 IB와는 다른 느낌인데, 좀 더 차분하고 톤 다운된 느낌. 역시나 유학생 출신이 많고 영어/한국어 편하게 구사. 하우스마다 특징들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빡세고, 빡빡하고, 날카롭다. 수백, 수천억을 책임지고 투자 의사결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굉장히 젠틀하고 고급진 매너를 가진 사람이 많음.
자문사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김앤장, 태평양, 세종 같은 빅펌의 M&A/자문 부분. PWC, KPMG, 딜로이트, E&Y의 실사, 가치평가, Tax 팀
고객들이 언제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을 줘야하는 자문사분들은 일을 정말 많이 함.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똑똑하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 특히 변호사들은 밤샘 협상을 해도 지친 기색 없이, 맑은 정신으로 착착 회의를 진행하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님. 파트너변호사들은 세상의 말 잘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말을 잘하고, 감정적으로 흔들림 없이 논리로 파고듦 (감정적으로 흔들림을 보여준다면, 그건 계산된 action일 것). 회계사 분들은 어젯밤에도 야근한듯한 지침과 피로가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일의 특성상 보수적이고 꼼꼼한 분들이 많음. 조곤조곤 할 말 잘 하신다.
그밖에 증권사, 상대회사 임직원, 정부기관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많이 일 안 해봄 & 사바사가 큰 부분이라 패스.
(아직도 좀 그렇지만) 어릴 때는 회의에서 목소리 내는 게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틀린 얘기 할까 봐, 멍청해 보일까 봐.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나 콘퍼런스 콜일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 얘기해야지' 생각했다가도, 이 생각이 맞는 건지 몇 번을 고민하고, 일단 좀 더 들어보자 들어보자 하다 타이밍을 못 잡아 한마디도 못하는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스스로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회의에서 무조건 한마디 이상 하기'. 의견이든 질문이든, 하다못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Thank you for the explanation' 일지라도 무조건 한마디 하기.
남자들은 (특히 시니어들은) 말을 잘한다. 그리고 세게 한다. 맞든 틀리든 일단 말을 해야 토론이 진행되고, 의견을 얘기해야 내가 여기 앉아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다. 대부분의 회의가 정답이 있는 내용을 논의하는 게 아니다. 정답이 없으니까 의견을 모으기 위해 회의를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강하게 주장하고, 목소리를 많이 내면 그게 중요한 의견으로 받들여지고 (설사 잘못된 의견이라고 판명이 될 경우라도) 앞으로 계속 함께 논의를 해야 할 사람이 되는 거다. 대체로 보면 남자들은 이런 걸 여자들보다 훨씬 능숙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분야를 막론하고 내가 만남 남자 시니어들은 하나같이 이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여자들이여. 말을 더 많이 하자. 틀리면 어떡하냐고? 당신이 모르는 건 저들도 모를 테니 걱정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