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반 첫차를 타고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동트기 전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공기, 어둠을 지나 지하철 역사에 들어서면 고막을 찢는 지하철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새벽 5시 반 지하철의 공기는 출근시간과 많이 다르다. 에너지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지하철 속에 생기 없이 앉아 있는 나이 든 노동자들. 그 들 가운데 내가 결연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시 직장이 몸서리치게 싫었기 때문이다. 일도 싫고, 그 보다 사람이 더 싫어 하루하루 출근이 괴로웠다. 오죽하면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까 (이 생각을 엄마한테 말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내 생각은 자연스레 '이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직을 위한 준비를 위해 매일 새벽 회사 근처 카페로 출근을 했던 것이다.
딱히 자격증이나 시험공부를 하는 등의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다. 회사들 채용공고를 찾아 지원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는 등의 일을 했다. 당시는 당연히 이직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불태운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실질적인 이직을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출근 전 이직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시간이 아녔을까 싶다. 카페에서 실컷 이직 계획을 세우고 출근해 사장 얼굴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으니.
얼마 전 다른 일로 새벽에 일어나면서 이때 생각이 났다. 급행열차에 몸을 싣고 다른 사람들과 우르르 강남역에 내렸던 기억. 벽돌처럼 무거운 노트북을 등에이고, 밤 새 쌓인 술 마신 사람들의 흔적을 지나 카페로 들어갔던 기억.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기세 좋게 이직 계획을 세우던 기억. 지금은 차도 있고, 노트북은 책 한 권만큼 가볍고,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회사와 일하기 좋은 카페가 즐비해 있지만 몸은 집에 매여있다. 새벽잠에 푹 빠져 있는 세 돌 된 아이를 두고 어디를 가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인터넷에 연결하여 바깥으로 탈출한다. 그러면서 치밀하게, 조심스럽게 나의 Part 2. 를 준비해 본다.
아, 나의 첫 번째 이직 준비는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되면서 자연스레 실현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합병은 내 인생에 일어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가 되었다. 나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 새벽의 시간이 1백만 분의 1 정도의 기여를 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