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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Jan 22. 2021

자네 아버님은 뭐하시나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내 인생은 어찌 보면 손실회피 편향이 이루어낸 결과물로 보이기도 한다. 과 선배 동기들이 한 번씩은 거쳐가는 신림동 고시원 생활을 '아니야 저렇게 2년 공부하고 안되면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옵션에서 지워버렸고, 아나운서를 한답시고 아카데미에 다니며 방송사 시험을 보며 난리를 피웠지만 '결국 안될 것 같아. 더 데미지를 입기 전에 그만두자'라고 생각하고 취업을 준비했다. 어찌 된 일인지 서류, 인적성에서 줄줄이 떨어지자 '이대로 있다간 졸업하고 실업자 되겠다' 싶어, 냅다 진로를 바꿔 대학원을 진학했다. 이건 이렇게 겁쟁이 같은 선택을 내리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과정 중에 생긴 일이다.


대학원 진학은, 학교와 과를 고르는 건 대학입시와 동일하지만, 내가 전공으로 선택할 분야의 지도교수님을 선택한다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선택을 요한다. 물론 대학원에 들어가서 1년 수업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입학 전에 지도교수님을 컨텍해서 면담을 해 세부 전공을 정해 놓고 들어간다. 석박사 5년-7년이라는 긴 시간을 대학원에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며, 연구의 방향을 미리 정해 놓기 위함도 있지만, 이는 대학원 입학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똘똘해 보이는 학생을 제자로 삼고 싶은 교수가 학생 한 명 입학을 승인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재량은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학교와 세부 전공, 교수님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지금 생각하면 뭣도 몰랐지만 그때는 나름 의미를 갖고 지도교수님으로 삼고 싶은 분들을 리스트업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교수님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하는지, 최근에도 활발히 논문을 쓰고 있는지, 어떤 논문을 작성했는지 등을 파악했다. 그렇게 모교인 K대와, S대 교수님 2-3분을 컨텍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먼저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S대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 찾아오라는 답메일이 왔다. 좀 의아하게 생각한 건 학교 연구실이 아닌, 신림동 모처의 건물 주소로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방학기간이니 밖에서 다른 연구를 진행하시나 보다고 생각하고 약속된 건물로 찾아갔다. 작은 회사의 사무실처럼 보였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작은 방에는 교수님과 컴퓨터, 전화기 그리고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고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공은 뭐했냐, 왜 공부를 더 하고 싶냐, 공부해서 뭐하고 싶냐는 등 의례적인 질문들이었다. 그 때까지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내 대답을 듣던 교수님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 아버님은 뭐하시나?'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머릿속이 순간 뒤엉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고, 질문의 저의를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아빠는 은행을 다니시다 얼마 전에 퇴직하고 집에 계세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게 왜 궁금하시죠?'라고 당돌하게 질문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미래를 찾지 못하는 불안감과 아빠의 퇴직이 가져온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들로 한없이 작아져 있는 상태였고, 교수님의 그 질문은 애써 일어나 달려보려는 아이를 주저 앉히는 그런 잔인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의 진짜 의미를 나중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이건 뭔가 불편하고 잘못된, 그런 질문이라는 감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교수님의 대답은 그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박사 하려면 돈이 좀 드는데...' 그 후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만남이 기분이 안 좋았던 것과, 그 직후 S 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교인 K대에 주저 없이 진학하게 된 것이 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순진했던 나는 기분은 좀 나빴어도 교수님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수는 교수가 될 자격이 없는 교수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교수가 공부하겠다고 오는 학생에게 '너 돈 없으면 안 돼. 다른데 가봐'라고 얘기를 할까. 실제로 석박사는 돈을 벌 수는 없어도 돈이 별로 들지는 않는다. 보통의 교수님들은 그런 학생들의 사정을 생각해, 지도 학생들을 조교로 고용하거나 프로젝트를 같이 하며 조금의 용돈이라도 쥐어주시려고 한다. 내가 대학원에서 만났던 교수님들은 다 그런 분들이었고, 나의 지도교수님 또한 그러했다. 이 글을 쓰며 몇 년 만에 그 S대 교수의 이름을 검색창에 쳐봤다. S대 학과 학장이 된 그 교수가  본인이 90% 소유한 사설 교육업체의 자문위원으로 등록해 불법 강의를 했다는 뉴스가 첫 페이지에 떴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때 내가 느꼈던 잘못된 감정은 정확했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것 같아 씁쓸하지만 시원했다.


아주 가끔 이 교수님과의 면담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짐한다. 사회에서 일을 하다 혹시라도 이 교수를 마주치면 꼭 물어보리라고. '그때 왜 저한테 그 질문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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