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hapter.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 인생에서 크고 작은 사회를 지나갈 때면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곤 한다.
혹자는 서로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들이 가장 편하고 친하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 초등학교 (당시 꽤 친하게 지냈던 6학년 때 친구들) 동창회 모임을 나간 적이 있다. 남자 여자 다 합쳐 10명 남짓. 성인이 된 모습에 여전히 예전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기억, 편지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풋풋한 연애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참 재미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변한 서로의 모습을 놀려가며, 이제는 술 한잔 기울일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찼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가랄 것도 없이 그냥저냥 웃어넘기고 있었다. 시시콜콜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게 불문율. 흔들리는 20대를 지나가고 있던 우리들의 시기적 환경, 그리고 감추고 싶은 마음, 배려하는 마음 등 복잡한 마음들이 만나서 나오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된 동창회는 약간은 쓸쓸한 기분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만난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 점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를 지나왔음에도 지금 자리에서 보면 서로 참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 교실, 같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우리들은 각자가 내려온 수많은 결정들로 지금은 서로 먼 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사회에 나와 나와 비슷한 문제를 마주하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더욱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되었던 것 같다. 소개팅과 연애를 하며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일과 커리어에 대해 논의하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회사 생활이 더 즐겁고 든든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행로도 (당연하게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같은 고민을 하던 우리는 지금은 각기 다른 나라, 다른 회사에서 조금씩 다른 문제를 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통하는 게 많았기에 톡으로, 간간히 겹쳐지는 출장으로 연결의 끈을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작년 말 회사 내 새로운 포지션에 도전할지 말지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때 그 친구 역량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S, 지금 우리 나이가 커리어 상 중요한 시기인 거 같아. 조직에서 클지, 그냥 편안한 트랙으로 갈지... S는 환경도 성향도 맘껏 일 욕심부려도 좋을 거 같아. 무엇보다 S 같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
진심이었다.
친구는 새로운 포지션에 도전을 했고, 우리는 친구의 CV를 읽으며 무엇을 보완하면 좋을지, 면접 때 어떤 점을 어필하면 좋을지를 업무 시간 틈틈이 함께 고민했다. 2-3개월 동안 수차례의 인터뷰를 보며 프로세스를 밟아가던 친구는 지난 주말, 승진 소식과 함께 그 포지션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I got the role! 방금 전화받았어!’
그 날은 우리 아들 직장 어린이집 OT 날이었고, 정신없이 애를 돌보며 담임선생님 설명을 듣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 톡을 볼 수 있었다.
친구가 부러운 것도, 나만 뒤쳐지고 있는 것 같은 조급함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내리고 있는 크고 작은 결정들로 인해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또다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었다.
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한 사람과 결혼했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고, 직장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고, 친구는 자신의 일을 서포트해 줄 사람과 결혼을 했고, 아기를 낳지 않기로 했고, 글로벌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들을 내린 지 3년 후, 친구는 글로벌 회사의 중요한 보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일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맞이했고,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회사에서는 출장과 야근이 필요 없는 일들을 맡아하게 되었다.
20대 때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와 달라진 건, 이러한 변화를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더라도 그들의 삶과 내 삶은 각각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지 누가 더 나은 삶을, 더 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책의 한 챕터가 끝나면 새로운 등장인물과 새 이야기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워킹맘이라는 챕터가 시작된 나의 삶에 또 다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친구들을 맞이 할 준비가 되어있다.
친구 승진 기념 선물이나 사서 보내야겠다. 예쁘게 하고 미팅 들어가라고 화장품 사줘야지.
Susie, I am just so happy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