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10분을 앞둔 5시 50분에 집에 계신 이모님한테 전화가 왔다.
"자네 곧 퇴근이지. 지금 빨리 집으로 와. 준이가 토를 엄청 했어"
급해 보이는 이모님 목소리에 가방을 들쳐 매고 미끄러지듯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기도가 막힌 건 아닐까. 내가 119를 먼저 불렀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모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준이가 숨은 잘 쉬고 있나요?"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 녀석은 실실 웃으며 자기가 토해놓은 토사물 앞에 알짱거리고 있었다. '휴우...' 이모 설명을 들어보니 이게 그 유명한 '장염'인가 보다 싶었다. 말로만 들어본 장염. 드디어 네가 우리 아들에게도 찾아왔구나.
이 날 저녁 아이는 세 번의 설사와 두 번의 토를 더 했다. 이상한 냄새에 기저귀를 열어볼 때마다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었던 물똥이 나와있고, 간신히 재운 아이가 흘러 나온 설사에 옷이 다 젖어 울면서 깨어나고... 자그마한 아이의 입에서 내가 떠먹여 준 흰 밥이 꾸역꾸역 밀려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밤새 수시로 엉덩이에 코를 처박고 킁킁 냄새를 맡느라 이게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해 카페인과 설탕의 기운에 기대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이가 아픈걸 자꾸 잊어버린다.
15개월 준이 인생 처음으로 찾아온 병인데, 채 10시간도 전에 아이를 끌어안고 울던 나인데, 회사에 오자 그걸 자꾸 잊는다. 점심이 되자 '아 맞다!' 화들짝 놀라며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상태를 확인한다. 남편은 이미 이모한테 전화를 해봤었나 보다. 퇴근 즈음 잊고 있다 다시 깜짝 놀라 CCTV를 켜서 아이가 잘 노는지 확인한다. 집에 돌아와서야 컴퓨터를 붙잡고 있던 8시간 동안, 네이버에 '아이 장염' 단어 한번 쳐보지 않았던 걸 깨닫는다.
'하.... 뭐지. 아이 걱정에 일이 손에 안 잡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번 주부터는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적응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는데 몇 주간은 엄마와 아이가 원에서 같이 있다, 조금씩 떨어졌다, 결국 혼자 있을 때까지 적응을 도와주는 거라고 한다. 나는 '아이가 적응 못하면 휴직하고 아이 볼 거야. 무조건 우리 준이가 제일 먼저지'라고 호기롭게 얘기했지만, 맘속으로는 '적응해라 적응해라. 제발 적응해라'를 외치고 있었다.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난 아이를 재우면서 딴생각을 많이 한다. 우유병을 물리고 토닥토닥해주며 처음에는 노래도 불러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지만 이내 딴생각에 손은 우유병에 고정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 딴생각의 대부분은 회사, 일, 사이드잡 등의 생각들. 어쩔 때는 아이한테 안 보이는 방향으로 핸드폰을 켜서 SNS나 기사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다시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이를 꼭 껴안아 주고 손을 잡아도 본다.
'이 순간이 나중에는 엄청 그리울 소중한 시간일 텐데 넌 뭘 하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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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인 엄마인가.
다들 그런거겠죠?
다들 그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