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스테이크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렘과 동시에 침샘을 자극하는 단어다.
스테이크의 종주국 하면 흔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꼽지만, 이탈리아에도 자랑할만한 스테이크가 있다. 바로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전통요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이하 ‘피오렌티나’)다.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피오렌티나의 유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메디치가가 피렌체의 사실상 지배자였던 16세기. 메디치가는 자신들의 재력과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매년 8월 10일 산 로렌초 축제가 되면 광장에 커다란 장작불을 놓고는 고기를 구워 도시민들을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마침 도시에 와있던 영국인 상인들 구워진 쇠고기를 보고는 “비프스테이크 Beef steak!” 하며 외쳤는데 여기서 스테이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비스테카 Bistecca’라는 말이 유래됐고 그들이 군침을 흘리며 원하던 스테이크는 피렌체식 스테이크,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가 되었고 한다.
피오렌티 스테이크의 유래로 꽤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일화에 묘사된 쇠고기 구이는 지금과 같은 스테이크가 아닌 통 바비큐 내지는 로스트비프(Roast Beef)에 가까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선‘비스테카’라는 용어가 영어 ‘비프스테이크’에서 온 것은 인정하나 피오렌티나의 유래에 대해선 19세기 토스카나 지방에 찾아온 영미권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시초라는 설을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긴다.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피오렌티나는 토스카나 지방이 자랑하는 키아나소의 T-Bone 부위를 사용한다. 이것을 1kg, 2~3cm 두께로 두툼하게 썰어 단지 숯불에만 구워내는 지극히 원초적인 요리다.
고기엔 아무 처리도 하지 않는다. 잘린 그대로 불위로 올라간다. 굽고 난 후엔 질 좋은 소금과 후추, 올리브 오일만 곁들여질 뿐이다. 고기의 굽기는 무조건 레어다. 미디엄 레어라도 되어버면 더 이상 그것을 피오렌티나라고 부를 수 없다. 레어지만 겉면을 완벽히 익히고 충분히 휴지 시킨 피오렌티나는 육즙이 빠져나올 틈이 없다.
단순함의 미학이 극대화된 이 스테이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채식주의자나 힌두교도, 스님이 아닌 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 방식도 간단하지만 그 맛도 굉장히 직선적이다. 큼직하게 썬 피오렌나 한 조각을 씹으면 숯불의 진한 향과 함께 충분히 시어링 된 겉면에서 나오는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기 자체의 고소하면서 담백하고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데, 이때 나중에야 합류한 소금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한층 더 고기 맛을 살려준다.
이 순간만큼은 온 우주에 고기와 나, 둘 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다.
등심과 안심이 붙어서 나오는 T-Bone 부위인 만큼 두 부위의 질감, 맛의 대조도 재미있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미각의 만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단순함의 미학,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다.
인간계에서 더는 적수가 없을 것 같은 이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와 쌍벽을 이루는 요리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다. 바로 밀라노의 '코스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stoletta Alla Milanese 이하 밀라네제)’다.
코스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stoletta Alla Milanese)
갈비뼈라는 뜻의 ‘코스톨레타’란 이름에 걸맞게 송아지 등심 부위를 뼈와 같이 잘라낸 것을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 요리다. 일본식 돈가스의 유래를 오스트리아의 슈니첼(Schnitzel)로 보는데 그 슈니첼의 원형이 바로 이탈리아의 밀라네제다. 돈가스의 조상님 격이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뼈가 붙은 송아지 등심 부위를 1~2cm가량 썰어 칼 등으로 가볍게 다져주고 밀가루와 달걀물, 빵가루를 순서대로 묻힌 후 정제 버터를 녹인 팬에 굽듯이 튀긴다. 모양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커다란 돈가스다.
피오렌티나가 반드시 레어야만 한다면 밀라네제는 분홍빛이 선명한 미디엄이어야 한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밀라네제엔 단지 소금과 후추면 충분하다. 피오렌티나와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소스도 필요치 않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 이탈리아 요리의 특징이다. 버터의 진한 향과 고소함, 소금의 짠맛과 후추의 향만이 고기 맛을 도울 뿐이다. 굳이 무언가를 곁들이고자 한다면 레몬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버터라고 하는 이 동물성 지방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풍미를 한가득 안은 고기의 맛은 가히 사치스러울 정도다. 피오렌티나가 비교적 서민적이고 우직한 맛이라면, 밀라네제는 좀 더 귀족적이고 화려한 맛이랄까.
코스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stoletta Alla Milanese)
피오렌티나와 밀라네제를 놓고 보면 토스카나와 롬바르디아 두 지역의 특성과 차이점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가 특징이다. 특히 질 좋은 올리브가 나기로 유명하다. 풍부한 올리브 자원 덕에 전통요리 대부분은 올리브유를 주로 이용한 ‘지중해식’ 요리가 차지하고 있다.
반면 강수량이 많고 드넓게 펼쳐진 평야 지형의 북부 롬바르디아는 쌀농사와 낙농업이 발달했다. 올리브가 자라기 힘든 기후 탓에 롬바르디아를 비롯한 북부지방의 전통요리를 살펴보면 식물성 올리브 오일 대신 버터나 라르도 등 동물성 지방을 주로 이용한 요리들이 많이 눈에 띈다. 환경이 식탁을 결정한 셈이다.
이탈리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두 요리를 먹어보고 그 맛의 차이를 느껴 보시길. 단, 꼭 피오렌티나는 피렌체에서, 밀라네제는 밀라노에서 맛보시길 바란다. 서울에서 먹는 돼지국밥과 부산에서 먹는 순대국밥만큼 원래의 맛과는 다른 차원의 맛을 경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고맙게도 그렇게 멀지도 않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에서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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