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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Nov 10. 2016

정육식당의 재발견, 프라하의 'Nase Maso'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체코 프라하는 인연이 깊은 도시다. 난생처음 밟은 유럽의 첫 도시이자, 재방문한 첫 번째 장소.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이곳을 기점으로 동유럽 및 독일의 음식들을 살펴보기 위해 2년 만에 프라하를 다시 찾았다. 프라하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수백 년 동안 그래 왔듯 까를교와 프라하성, 시계탑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변한 건 나뿐일까. 이들을 뒤로하고 음식, 오로지 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니 2년 전에는 보지 못한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일종의 통찰이랄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코기토 Cogito' 명제에 견줄만한, 깨지지 않는 명제를 하나 깨닫게 됐는데 바로 '유명 관광지 근처의 식당은 맛이 없다'다. 


추론컨데 유동인구가 많으니 굳이 맛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먹는다. 당연히 평판이 중요하지 않고 따라서 맛있게 만들 이유도 없다는 것. 요리를 해보니'멀쩡한 식재료를 가지고 맛없게 만드는 것'도 용한 능력이란 걸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찌 됐건 되도록 관광지를 피해 현지조사를 하던 중 꽤 재미있는 곳을 발견하게 됐다. 이름하야 'Nase Maso'



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체코에서 'Maso'라고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직역하면 고기, 정육점이란 뜻이다. 'Nase Maso'를 번역하자면 '우리 정육점' 정도 되겠다. 요즘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드라이에이징 기법을 이용해 '프리미엄' 정육을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의 Master Butcher인 '프란지젝 크샤나'는 일찍이 푸주한인 아버지의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입담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유쾌한 입담에 매료된 단골들이 그가 처음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론칭했을 때 입소문을 퍼뜨렸고 그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값싼 돼지고기를 비싸게 주고 먹을 이유를 단골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독일에서 정육기술을 배운 유학파 동료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숙성육 전문점을 표방하며 Nase Maso를 만들었다.



창업스토리를 언급했지만 이곳이 인상 깊었던 점은 다른데 있다. 바로 발골하는 작업장과 정육을 파는 매대, 그리고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공간, 식사를 하는 공간이 한 곳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15석 정도 될까 싶은 공간에서 즉석에서 스테이크, 햄버거, 소시지 등을 요리해 맥주 또는 음료와 제공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정육식당과 비슷하달까. 주 용도는 어디까지나 정육판매. 공간을 보면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건 팬서비스 차원에 가까울 정도로 비중이 낮아 보이지만 사람들이 꽤나 몰린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햄버거를 주문해봤다. 일반 햄버거가 있고 드라이에이징 한 햄버거가 있길래 비교를 위해 둘 다 시켰다. 주문을 받자마자 안쪽의 주방에서 고기 다지는 소리가 들린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방에서 보이는 시각적 자극, 고기가 다져지고 패티가 굽히는 소리의 청각적 자극이 기다리는 동안 군침을 돌게 한다. 



햄버거의 고명은 말 그대로 '약간'의 피클과 양파, 그리고 존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은 소량의 소스가 전부. 두툼한 패티의 맛을 온전히 느끼라는 배려다. 패스트푸드의 햄버거가 자극적인 소스 맛과 간이 센 패티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이곳의 햄버거는 고기. 고기가 전부다. 고기의 간은 심심한 듯 하지만 고기 특유의 맛을 느끼기에는 적당했다. 고명인 피클과 양파는 고기 맛이 질리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역할만 해내고 있었는데 과함과 덜함 사이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었다. 맥주를 절로 부르는 맛이랄까.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신선한 고기들이 즐비한 매대와 그 재료들로 즉석에서 요리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내가 먹게 될 음식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무한히 커진다. 

식사 경험이 단지 눈앞의 음식과 나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식사 과정이자 매혹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에서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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