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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Mar 30. 2019

닭을 자세하게 먹는 방법



언젠가 한국의 쇠고기 구이집에 온 어떤 일본인 관광객이 '소 한 마리'라는 메뉴를 보고 정말로 소 한 마리를 다 주는지 알고 꽤 놀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만 그렇지 각종 부위를 골고루 내었다고 해 붙여진, 과장된 한국적인 유머가 담긴 메뉴명인 셈이다. 유사하게 돼지고기의 각종 부위를 썰어 내놓은 '돼지 한 마리'도 있다. 


덩치가 큰 소나 돼지는 어쩔 수 없다셈 치더라도 닭은 정말로 한 마리째 소비가 가능한 식재료다. 1인 1 닭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성인 1명이 거뜬히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닭이 이제 새로운 기준이 됐다. 닭이 작다 보니 부위별로 해체를 해도 별로 먹을 것도 없고, 또 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육질의 풍미도 옅다. 이런 작은 닭은 짭조름해지도록 소금물에 담가 바삭한 튀김옷을 입히는 조리법이 최선일 수 있다. 



우리는 통구이나 치킨, 삼계탕, 닭볶음탕의 경우처럼 한 마리 통째로 굽거나 튀기거나 삶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닭도 오래 기르고 덩치가 커지면 부위별로 각기 다른 식감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의외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그랬다.


마리째 소비하는 우리와 반대로 일본은 닭을 가장 세분해서 먹기로 일가견이 있는 나라다. 닭을 최소한으로 발골 정형해 각 부위 특성에 딱 맞는 조리법으로 요리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야키토리, 우리말로 닭꼬치 요리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퇴근 후 근처 호프집에서 치맥 한 잔 하듯, 일본의 직장인들은 야키토리에 맥주 한잔하는 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자, 일본인들이 어떻게 닭을 자세하게 먹는지 한번 살펴보자. 다리살, 날개, 가슴살, 껍질, 어깻살, 목살, 꼬리 살, 오도독뼈, 엉덩이살, 머릿살뿐만 아니라 간, 심장, 모래주머니, 난소 등 내장도 허투루 남기지 않는다. 여기에 파나 시소를 곁들인다든지, 뼈에 붙은 살들을 모아 경단을 만든다든지 조리 방식에 따라서 많은 종류가 있다. 단순히 메뉴만 훑어보아도 닭 한 마리를 어떻게든 낭비 없이 사용하겠다는 강한 집념이 느껴진다고 할까.



야키토리의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 소금과 양념(다레)이다. 재료 위에 가볍게 뿌려지는 소금은 원재료가 신선하고 좋을 때 빛을 본다. 양념은 각종 내장으로 만든 야키토리에 더 어울린다. 집집마다 비장의 양념 레시피가 존재하는데 대부분 간장과 된장, 설탕, 미림, 청주의 범주 안에서 만들어진다. 야키토리는 가게 수만큼 각각의 스타일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맛이나 스타일에 정답이 없듯 야키토리를 구워 내는 요리사들은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단지 소스를 얇게 펴 발라 굽는 곳도 있는 반면 된장과 미림을 푼 국물에 푹 담갔다가 간장을 발라 구워 내는 곳도 있다. 



야키토리를 굽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나의 공연을 보는 것 같다. 각 부위에 알맞은 상태로 굽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육즙을 많이 증발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지 않고 속이 고루 익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뜨거운 열원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완벽한 야키토리를 굽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장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인들이 야키토리 말고 닭을 즐기는 대중적인 방법은 나베와 스키야키(일본전골)다. 일본의 대표 토종닭, 나고야 코친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닭 전문점을 찾았다. 각각 뉘앙스는 다르지만 닭의 풍미를 국물에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닭볶음탕처럼 한 번에 모든 부위를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흰 살과 붉은 살, 껍질 등 부위별로 순차대로 맛보는 것도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다. 



닭을 회로 먹는 닭 사시미에서부터 나베, 스키야키까지 모든 요리마다 닭의 맛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오래 키우고 뛰어다니며 자란 큰 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닭의 가치는 닭 자체에도 있지만 부위별로 맛을 구분하는 데에서도 나올 수 있다. 닭의 가치를 발굴하여 소비자에게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 일본 나고야에서 배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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