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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Mar 02. 2019

스페인의 초대형 시골닭 '피타 핀타'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한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육계는 한 마리에 1Kg 남짓이다. 종종 1+1 행사 중인 닭은 8호, 즉 마리에 800g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크다고 하는 토종닭도 대형마트에서는 11호를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발품을 팔아 재래시장에 가야 13호 이상, 운이 좋으면 15호까지 찾아볼 수 있다.


왜 우리는 닭을 크게 키우지 않는 것일까. 여기엔 농가의 생산성 문제와 크기야 어찌 되었건 한 마리를 선호하는 시장, 그리고 이미 작은 닭에 맞춰진 도축 설비 등 많은 이유가 얽히고설켜있다.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시골 해안가에 위치한 호텔 겸 레스토랑 La Farola del Mar에서 만난 토종닭 피타 핀타(Pita Pinta)는 크다 못해 거대했다. 막시 셰프는 도축 후 무게만 3.5kg에 달하는 거대한 닭을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닭이 아니라 마치 작은 공룡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랄까.



피타 핀타에 비하면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인 육계는 자라다 만 병아리 취급을 받을만하다. 피타 핀타가 2.5kg 정도면 영계로 분류되는데, 크게는 5.3kg까지 유통이 된다. 작은 닭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엔 실로 무시무시한 사이즈다.



검은 깃털에 점처럼 박힌 흰 얼룩이 특징인 피타 핀타를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반점이 있는 닭'이다. 아스투리아 지방에서는 '거리의 닭'이란 뜻에서 피투 카레야(Pitu de caleya)라고도 불린다.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는 지역의 토착 종자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십수 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토종닭 피타 핀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중남부와는 달리 스페인 북부의 지형은 온통 산으로 뒤덮여 있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코니시 크로스 계열의 육계와는 달리 피타 핀타는 지대가 높고 습하고 추운 북부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지역의 환경에 적응한 진정한 의미의 토종닭인 셈이다.



피타 핀타 농가는 여태껏 본 곳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산 골짜기에 있는 피타 핀타 사육장 주위엔 마치 야구 경기장이나 골프연습장 마냥 녹색 그물을 넓게 쳐 놓았다. 그물을 쳐 놓은 이유는 산짐승과 날짐승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튼튼해 보이는 피타 핀타에게 생명의 위협이란 외부의 습격과 운명의 날 말고는 없어 보이는 듯 했다.


피타 핀타는 최소 6개월에서 많게는 2년까지 기른다. 성장 속도가 비교적 완만한 품종적 특징 때문이다. 제법 크다고 하는 브레스 거세 수탉 '샤퐁'도 사육기간이 길어야 8개월인 데 비하면 꽤 오래 기르는 편이다.



닭은 오래 기를수록 육향이 진해지고 근조직은 치밀해진다. 특유의 풍미가 강해지고 식감은 단단해진다는 뜻이다.


브레스 닭이 지방 불리기와 숙성을 통해 그 단점을 극복했다면 피타 핀타는 어떨까. 기대와는 달리 그저 오래 방목해서 키우는 것 말고는 특별히 뭔가를 더하는 건 없었다. 다만 오래 키운 닭에 걸맞은 조리방식을 사용할 뿐이었다.



La Farola del Mar의 막시 셰프는 피타 핀타를 이용한 요리로 스페인식 닭볶음탕 격인 '귀사도'를 선보였다. 양파와 피망을 진하게 익힌 다음 와인과 브랜디를 넣고 한 시간 반 가량 푹 졸이는 조리법이다. 핵심은 양파와 피망을 타기 직전까지 강하게 캐러멜라이즈 하는 데 있다. 닭 자체의 풍미가 강한만큼 소스의 균형도 강하게 맞추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단순한 조리법이라 맛에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여태껏 먹어봤던 여느 닭요리보다 훨씬 강하고 진한 풍미를 맛볼 수 있었다. 미슐랭 레스토랑들에서 맛본 브레스 닭이 섬세하고 여성적인 뉘앙스였다고 하면 귀사도 피투 카레야는 그 어떤 요리들보다 직선적이고 남성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미 프랑스에서 먹은 수많은 닭으로 조금은 지쳤던 입맛을 다시 일으켜 깨우는 맛이었다.



아스투리아스 지역 요리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쥔 비리 셰프의 피타 핀타 요리도 막시 셰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콩과 염장 삼겹살, 훈제한 피순대 모르시야에 매콤한 고춧가루 피멘톤을 넣어 끓인 얼큰한 파바다 스튜의 피투 카레야 버전, 귀사도 피타 핀타를 이용해 만든 크로켓에서도 역시 진한 풍미의 피타 핀타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장시간 조리하고 육향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한 터치를 주는 조리법은 오래 키워 풍미가 진한 닭에 대한 아스투리아스 지방 요리사들의 해법인 셈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피타 핀타를 키우는 일은 일반 육계를 키우는 것보다는 힘이 더 들고 수익도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종닭 생산을 멈추지 않는 건 일종의 사명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산성이나 효율을 떠나 그들 스스로 전통을 계승하고 유지하는 것에 있어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 피타 핀타 농부의 설명이다.


스페인에서 코니시 크로스 계열의 육계는 1kg당 2유로 정도지만 피타 핀타는 소매점에서 1Kg당 14유로에 판매된다. 무려 7배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지역의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역 농산물 소비에 적극적인 건 셰프들도 마찬가지다. 왜 피타 핀타를 이용한 요리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막시 셰프가 말했다.


"요리사들이 원하는 건 다양성입니다.
사람들이 먹지 않으면 피타 핀타는 사라집니다. 거의 사라질 뻔 한 식재료를 되살리는 건 생산자와 요리사의 몫입니다"



같은 질문에 비리 셰프는 이렇게 답했다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건 지역의 문화를 지켜가는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는 언제나 피투 카레야를 사용합니다"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 곧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며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생산자와 셰프들. 여기에 소비자까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아스투리아스는 얼마나 멋진 동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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