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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Mar 09. 2019

빈 캔버스 vs 꽉 찬 캔버스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요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나라마다, 요리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재료의 풍미를 한층 더 높이는 작업, 즉 감칠맛을 잘 끌어내는 것이 맛있는 요리와 맛없는 요리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본다. 각 문화권마다 감칠맛을 더하거나 끌어내는 재료가 있다. 



이탈리아는 토마토와 파르미지아노 치즈, 엔초비, 동남아는 멸치 액젓 같은 피시소스, 한국과 일본은 멸치나 가쓰오부시, 다시마 등을 이용한 육수인 다시와 각종 장류 등을 들 수 있다. 서양요리의 교과서 격인 프랑스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닭을 이용한 치킨 스톡이다. 닭에 양파, 당근, 샐러리 등을 넣고 한두 시간가량 끓여내는데 다른 요리나 소스에 감칠맛을 더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닭 육수를 두고 '빈 캔버스와 같다'라고 표현한다. 닭 육수로 기본적인 감칠맛을 깔아주면 그 위에 어떤 재료를 사용해도 맛을 내는 데 있어서 적어도 '감칠맛이 부족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빈 캔버스라는 말은 닭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닭 자체의 풍미가 적다는 얘기와도 같다. 육수로 쓴 닭 자체 풍미가 강하면 오히려 다른 요리의 풍미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맛본 토종닭 요리는 닭도 빈 캔버스가 아니라 꽉 찬 캔버스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광양의 지곡산장은 당일 도축한 토종닭을 숯불구이로 내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구경하기 힘든 닭 내장까지 구워 먹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발골 정형한 후의 닭의 육색은 육계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붉고 진했다. 강한 육색의 토종닭으로 요리한 숯불구이의 맛은 그동안 국내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닭 본연의 풍미를 충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신선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닭 자체의 풍미가 부족하면 느낄 수 없는 맛이다. 



해남에 위치한 장수통닭은 4개월 이상 키운 3kg 이상 된 토종닭으로 닭 가슴살 육회부터 양념 주물럭, 백숙과 죽을 선보이는 곳이다. 그날 도축한 신선한 닭이기에 육회로 먹어도 큰 문제가 없다. 흥미로운 건 한 마리 단위로 코스요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의 닭 요리를 만들어 낸 것도 어떻게 하면 한 마리를 통째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한 고민에서 나왔다고 한다. 닭이 서너 명이서 먹어도 충분할 만큼 크고 무엇보다 신선하기에 가능한 메뉴다. 


요리사로서 부끄럽지만 그동안 닭 요리는 관심사 밖이었다. 우선 너무 흔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자체의 풍미가 옅어 식재료로써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 캔버스의 닭은 요리사가 그 위에 맛을 더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토종닭처럼 꽉 찬 캔버스의 닭은 닭 다운 맛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는 식재료라고 할 수 있겠다. 


전남과 해남에서 맛본 두 토종닭 요리는 닭도 소나 돼지와 비교해 전혀 풍미가 떨어지지 않는, 제 몫을 온전히 하는 식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같은 식재료도 목적에 따라 그 종류와 조리법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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