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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Mar 16. 2019

닭이 난다고? 날아다니는 제주 구엄닭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슬픈 새들이 있다. 의외로 많은 종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건 닭, 타조, 펭귄 정도. 날 필요가 없어서 날개가 퇴화된 경우가 있는 반면, 날개가 있지만 애초부터 날지 못하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한 경우도 있다. 나는 데 특화된 다른 새들에 비해 몸집이 비대한 조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닭도 날개에 비해 몸통이 유난히 크다. 날개를 퍼덕이면 높은 점프는 가능하지만 새처럼 유연한 비행은 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 만난 구엄닭은 이런 상식을 산산이 깨부수었다. 닭도 날 수 있다. 구엄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육계에 비해 체구가 작고 날개가 크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는 옛 속담은 아마도 구엄 닭을 두고 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구엄닭은 한국에 몇 안 되는 토종닭 중 하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생산성이 뛰어난 개량 닭이 조선에 들어와 토종닭이 밀려나는 일이 있었다. 육지의 토종닭들이 사라져 갈 때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 구엄에는 아직 조선의 토종닭 혈통을 가진 닭이 남아 있었다. 거의 사라져 갈 뻔했던 구엄닭은 사명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사육돼 지금은 2만여 마리가 제주도 땅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구엄닭은 작다. 30일이면 1.5kg이 넘게 자라는 육계와 달리 10개월을 키워도 1kg이 조금 넘을까 말 까다. 닭을 오래 키웠는데 몸집이 작다는 건 곧 수익성이나 효율과는 머나먼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생산자 입장에서 굳이 키워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구엄닭을 키우는 제주웰빙영농조합법인의 '애월아빠들'의 이욱기 대표는 어려워도 제주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아스투리아스의 토종닭 생산자가 떠올랐다. 생산성이나 효율과는 별개로 전통을 이어나가는 자부심으로 토종닭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먹어야 오히려 멸종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다. 소비가 있어야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구엄닭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생산자로써 어려울 일이 없다. 문제는 구엄닭의 식재료적 가치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주 주민이나 닭을 파는 상인들조차 구엄닭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다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과연 구엄닭은 식재료로써 어떤 가치를 갖고 있을까.




닭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끼는 조리법은 역시 소금만 살짝 뿌린 후 불위에서 굽는 방법이다. 10개월을 키운, 도체중량 900g 되는 구엄닭을 석쇠에 넣고 한 마리를 통째로 숯불에 구웠다. 눈으로 보이는 특징은 정말 작고 육색이 상당히 붉다는 점이다. 마당에서 뛰어놀고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이 온몸의 붉은 근육에서 나오는 듯했다. 여태 봐왔던 토종닭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났다.



잘 구워진 구엄닭 숯불구이를 입안에 넣었다. 충분히 맛을 음미한 후 내린 결론은 '이건 닭이 아니다'다. 여태 알고 있던 닭의 맛과는 다른,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프랑스 드롬에서 맛보았던 뿔닭이나 꿩 같은 다른 야생조류의 풍미와 가까운 맛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야생조류 특유의 진하고 날카로운 맛 대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부드럽게 느껴진다고 할까.



10개월 이상 기른 이유 때문인지, 종의 특성인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요리사로서 탐낼만한, 독특한 식재료로써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백사장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너무 질겨지거나 퍼석해지지 않게 특성을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잘만 조리한다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한국만의 식재료로써 가능성이 보였다.


사명감으로 좋은 식재료를 생산하는 생산자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구엄닭의 미래는 이제 요리사와 소비자에게 달려있다. 언젠가 가판대에서 육계와 토종닭 옆에 나란히 구엄닭이 놓여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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