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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Dec 08. 2016

프렌치프라이의 원조를 찾아 떠나는 기묘한 모험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벨기에는 참 애매한 나라다. 한 나라를 두고 애매하다느니 하는 건 참으로 시건방진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동쪽 끝에서 온 이방인이 보자면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명확한 특색이 없어 보여 하는 말이랄까.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 낀 이 나라는 원래 네덜란드 변방의 한 영지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비로소 국가로 인정받은 네덜란드와 한 몸이었다가 19세기가 돼서야 겨우 독자 국가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민족국가로서의 자주독립이라기보다 주변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가 기반인지라 언어도 자국 고유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어 세 종류를 사용하는데 요리도 세 국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사실 유럽의 요리를 국가별로 구분하기엔 무리한 감이 있다. 크게 보자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라틴 문화권의 요리와 프랑스 독일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을 아우르는 게르만 문화권의 요리, 동유럽 슬라브 문화권의 요리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 문화권과 개별 국가들의 요리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꽤 있어 딱 잘라 어느 나라의 요리는 어떻다고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벨기에는 게르만 문화권의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크게 도드라지는 메뉴를 가지고 있진 않다. 잘해야 벨기에식 홍합요리를 꼽지만 같은 바다에서 잡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홍합요리와 견주었을 때 그렇게 특출 난 점도 없다.(벨기에 국민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홍합요리를 빼고 유명한 건 튀긴 감자요리 즉, 감자튀김이다. 당장 벨기에 음식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우리가 프렌치프라이로 알고 있는 그 감자튀김의 원조가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라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정확히는 서로 원조라 주장을 하고 있으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다. 



벨기에 측의 주장은 이렇다. Jo Gérard라는 벨기에 저널리스트는 1781년의 한 문헌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1680년대 생선 튀김을 주로 먹던 Meuse valley란 지역에서 우연히 감자튀김이 개발됐다고 전한다. 겨울이 돼 생선이 귀해지자 궁여지책으로 생선 대신 감자를 잘라 튀겨 봤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 조리법은 벨기에 전역으로 뻗어 나갔고 1차 대전 당시 벨기에에 상륙한 미군이 감자튀김을 보고는 크게 감명을 받아 고국에 돌아가 이를 소개했는데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지방을 프랑스로 착각해 감자튀김을 프렌치프라이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대략 이런 정도로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지만 반론이 있다. 감자튀김이 발명됐다던 그 지방엔 1735년까지 감자가 전해지지 않았을뿐더러 당시 가난한 농가에서 재료를 기름에 푹 담그는 '딥 프라잉'을 할 만큼의 지방이 흔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성 기름은 당시 귀족이나 있는 집에서만 쓸 수 있는 고급 식재료였고 이를 이용한 조리는 기껏해야 소테(sautéed:기름을 약간 두르고 굽는 조리법)였다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또 미군이 1차 대전 이후 미국에 소개했다고 하나 1856년에 나온 미국의 문헌에 '프렌치프라이'라는 단어가 이미 등장한다.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1차 대전은 1914년에 발발했다.



프랑스 측의 주장도 한 번 살펴보자. 2013년 벨기에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감자튀김을 '벨지움 프라이'로 등재하려 하자 촉발된 '프-벨 간 감자튀김 논쟁' 당시 '르 몽드(Le Monde)지'의 기사에 따르면 1789년 퐁네프 다리 위의 노점에서 한 상인이 처음 만들어 팔았던 것이 그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도 논란이 되는 게 1755년의 문헌에 '튀긴 감자'라는 표현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서 미국의 문헌에 등장한 'French fried potatoes'가 얇게 썬다는 의미의 프랑스 조리 용어 '줄리엔(Julienne)'에서 비롯돼 '프랑스식(줄리엔)으로 썰어 튀긴 감자'가 '프렌치프라이'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양국의 첨예한 논쟁을 살펴보면 둘 다 허점이 보인다. 서로 심증은 있지만 판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슬며시 끼는 건 스페인이다. 튀김 요리는 기원전 5000년 전의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리브 오일, 식물성 오일을 이용한 튀김요리는 고대 로마 기록에도 나오는데 튀김요리를 심화 발전시킨 건 이슬람 문화권이다. 이 때문에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서유럽 튀김요리의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열며 처음으로 감자를 유럽에 소개한 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지금도 여전히 튀김요리는 양 국가의 요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덴푸라도 17세기 말 일본에 상륙한 포르투갈 선원과 선교사들이 먹던 튀김요리에서 유래했다. 마침 벨기에에서 처음 감자튀김을 발명했다는 지역도 당시 스페인령-네덜란드였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범상치 않은 사실 이리라.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보건대 감자튀김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베리아 지역의 튀김요리에서 비롯됐고 사랑과 요리에는 국경이 없듯 감자가 전 유럽에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튀기는 조리법도 함께 전해졌고 벨기에와 프랑스 지역에서 유행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자칭 원조 벨기에의 감자튀김은 뭔가 다를까.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식 감자튀김에 비교하자면 두께가 1cm 제법 두툼한 편이다. 소스는 오로지 케첩만 어울릴 것 같은 감자튀김이지만 벨기에에선 마요네즈가 더 선호된다. 케첩의 강렬하고 짜릿한 맛보다 마요네즈의 은은하고 고소한 맛이 의외로 감자와 잘 어울린다. 마요네즈의 감칠맛이 튀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감자를 입안에서 맴돌게 한달까. 홉 함량이 높은 벨기에 맥주와도 의외로 궁합이 잘 맞다. 


이외에도 커리부어스트를 연상시키는 커리마요네즈 소스를 비롯해 타르타르, 홀랜다이즈, 땅콩 등 다양한 소스를 곁들이는 것도 벨기에식 감자튀김의 특징 중 하나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감자튀김은 다른 음식에 곁들여 나오는 사이드 메뉴로 나온다면 벨기에에선 하나의 단품요리로 당당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맛은? 국제적인 원조 논쟁이 멋쩍게 느껴질 만큼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맛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면 좀 위안이 될까. 감자튀김은 어디서 어떻게 튀겨도 결국 감자 맛이니 말이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의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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