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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Dec 13. 2016

인류 역사를 바꾼 생선, 네덜란드 '하링(Haring)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생선 한 마리가 인류 역사를 바꿨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바로 네덜란드와 청어 이야기다.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를 있게 한 원동력은 청어였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저 멀리 몽고군의 기마병(騎馬兵)처럼 네덜란드가 '청어병'이라도 만들어 바다를 지배한 것일까. 네덜란드가 군사 강국인 적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현명했다. 청어를 팔아 세상의 중심이 됐다. 17세기까지 전 세계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두고 '청어 뼈 위에 건설됐다'라고 평한 게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당시 청어를 잡아 팔던 곳이 네덜란드 지역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청어는 발트해와 북해지역에 주로 서식했는데 자연히 이 바다 인근의 해안가 지역에서 청어잡이는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네덜란드가 이들과의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어부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14세기경 네덜란드 남쪽 제일란트(Zealand) 지방의 어부 빌럼 베첼즌(Willem Bueckelszoon)이 작은 칼로 청어를  빠르게 손질하고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기빙(Gibbing)이란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해낸 것이다. 청어를 소금물에 절여 통에 보관하면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있는데 이는 곧 더 멀리까지 청어를 수출할 수 있고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지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 네덜란드산 청어를 유럽 곳곳에 팔았다. 이윤을 좇은 상인들의 욕망만큼 청어 무역도 그 규모가 커졌다. 수요가 발전을 이룬다는 말처럼 해상운반을 위한 조선기술과 어업기술도 같이 발전을 거듭하고 그만큼 네덜란드는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7세기 대선단을 거느리고 황금시대를 누렸던 해상강국 네덜란드를 있게 한 것은 결국 청어였던 셈이다.



잠시 기빙에 대해 살펴보고 가보자. 오늘날처럼 냉동설비가 없던 시절 식재료를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있는 방식은 세 가지밖에 없었다. 소금이나 식초를 이용해 절이던가, 훈제시키던가, 발효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영어권에선 절이는 방식을 큐어링(Curing), 훈제는 스모킹(Smoking)이라고 한다. 염분과 산, 연기를 이용해 박테리아 형성을 억제함으로써 부패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썩진 않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맛이 변한다는 것이다.


재료를 소금으로만 절이면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재료 안의 수분이 빠지고 염분이 침투한다. 재료는 건조해지고 짠맛이 감돌게 된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나 스페인의 하몽과 같은 생햄이 대표적이다. 식초에 담그면? 피클을 떠올려보라. 신맛이 재료를 지배한다. 훈제하면 특유의 훈연 향이 배게 되는데 원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는 건 마찬가지다.


기빙이 획기적이었던 건 박테리아 억제에 필요한 만큼의 소량의 소금을 넣은 물에 생선을 넣어 저장했다는 것이다. 저염도의 염수에 담가 놓으면 역시 삼투압 현상이 이뤄지는데 이때 염분뿐 아니라 수분도 같이 침투해 재료를 보존시켜주는 동시에 촉촉한 상태를 유지시킨다. 치킨 공화국 국민이라면 친숙한 용어, 염지(Brining)가 바로 그것이다.


염지를 이용해 음식물의 보존성을 높였던 전례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바로 치즈를 만드는 데 염지가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유를 효소를 이용해 굳힌 덩어리를 염지액에 충분히 담갔다가 저장해 발효시키면 우리가 아는 경질 치즈가 완성된다. 치즈에 짠맛이 나는 건 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선 오래전부터 치즈를 만들어 왔으니 빌럼이 여기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기빙 방식이 청어를 식초에 절이거나 훈연한 것과 달리 신선한 상태의 청어와 가장 가까운 맛을 선사해주었기에 네덜란드산 청어는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기빙 방식으로 만든 청어를 생으로 먹는 '하링(Haring)'이다. 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염분으로 인해 익었다고 보는 편이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는 불에 닿은 것만 익었다고 표현하지만 엄밀하게 소금, 설탕, 식초에 절이는 것도 '익은 것'에 속한다. 불로 익히는 건 곧 단백질에 변형을 주는 과정이다. 절이는 과정을 통해서도 단백질 변형이 이뤄진다. 날 것 그대로인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북해에서는 매년 청어가 잡히는데 5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잡히는 청어가 지방 함량이 특히 높아지는 시기라 이때가 제철이다. 따라서 6월부터 그해에 잡힌 제철 청어로 만드는 하링을 맛볼 수 있는데 이를 'Nieuwe Haring'이라고 한다. 요즘은 제철에 잡힌 청어를 냉동시켰다가 사용하기에 거의 매년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링을 맛볼 수 있다.



하링을 만드는 법을 살펴보자. 청어의 아가미와 알, 이리만 제거하고 염도 20%의 소금물이 담긴 나무통에 담가둔다. 청어알은 까맣게 물들여 캐비어 대용품으로도 쓰인다. 내장과 머리는 그대로 두는 데 이 때문에 숙성 중에 완전한 날것의 청어와는 다른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진다. 약간의 발효과정을 주는 것이다.


이 청어를 극단적으로 발효시킨 것이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악취 음식이면서 동시에 탐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이다. 수르스트뢰밍과는 달리 네덜란드의 하링은 최장 5일 간만 저장해놨다가 꺼내 먹는다.


청어를 먹는 다른 지역, 폴란드 러시아 체코 등 내륙지역에서는 식초에 절인 청어를 샐러드에 넣어 먹던가 감자나 다른 주요리의 반찬처럼 먹는 데 비해 네덜란드에선 하링에 양파와 피클만 곁들여 단품요리처럼 먹는다는 것이 다르다.



생선가게든 노점이든 하링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손질해 주는 것이 정석이다. 소금물에서 청어를 꺼내 머리를 자른 후 배를 갈라 내장을 호쾌하게 제거한다. 그런 다음 껍질을 벗겨낸 후 필렛을 뜨고 등뼈와 옆에 붙은 가시들을 발라낸다. 이렇게 즉석에서 손질한 하링의 안쪽은 연한 핑크빛을 띠어야 최상의 품질이라 부를 수 있다. 핑크빛이 사라진 하링은 십중팔구 오래된 것이다.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팔기도 하지만 하링을 있는 그대로 먹으려면 역시 그냥 먹어야 제맛이다. 하링 한 접시 달라고 하면 손질한 하링과 함께 잘게 썬 생양파와 피클 몇 조각을 얹어준다.



맛은 어떨까. 생긴 것만 보면 비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핑크빛이 사라진 하링은 비릿한 맛이 난다. 제대로 된 하링의 경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생연어 정도의 식감과 풍미다. 첫 느낌은 물컹하니 낯설지만 점차 씹을수록 진하게 배어 나오는 지방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는데 마치 질 좋은 생 치즈를 먹는 듯한 맛이다. 처음엔 낯설어서, 그다음엔 이게 뭐지 하는 마음에서, 그리곤 어 괜찮네? 맛있는데? 하다 보면 어느새 접시는 깨끗해진다.


하링만 집어 먹다 보면 물릴 수 있는데 양파를 곁들이면 느끼함이 덜하다. 여기에 피클로 마무리하면 입안에 돌던 잡맛이 한 번에 정리된다. 굳이 박하사탕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혹자는 하링을 청어 과메기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음식이다. 과메기가 건조 발효된 것인지라 곰삭은 특유의 풍미가 강한 반면, 하링의 경우 잘 숙성된 참치 뱃살을 먹는 듯한 간결하고 고소한 풍미를 준다.



청어 무역으로 쌓은 부를 통해 귀족들로부터 도시의 자치권을 획득한 네덜란드 상인들. 이들에게 '돈의 맛'을 알려준 것이 청어였다. 스페인과 영국이 힘으로 바다를 제압하려 했다면 네덜란드는 돈으로 바다를 얻었다. 네덜란드 깃발을 단 상선들은 세계 곳곳을 누볐다. 급기야 상인들은 그들의 손으로 자신들을 지킬 왕을 직접 선택하고 나라를 만들었다. 네덜란드 독립을 견제한 스페인이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봉쇄하고 때마침 청어 수확도 급격히 줄어들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유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것이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은행이 탄생해 네덜란드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도 자리 잡았다.


이 정도면 청어가 네덜란드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아, 물론 우리의 어부 빌럼 씨의 공도 잊어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의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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