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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Dec 20. 2016

 잿물에 담근 생선요리 '루테피스크(Lutefisk)'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어떤 한 음식의 역사를 쫓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전의 '프렌치프라이의 원조 논쟁'처럼 서로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을 하는 음식들이 있는 반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인물들의 건국설화에 맞먹을 정도의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음식들도 있다. (결국 유래를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중 하나가 바로 북유럽의 독특한 음식, 잿물(Lut)에 담근 물고기(Fisk) '루테피스크(Lutefisk)'다.


노르웨이식 루테피스크(Lutefisk)


생김새만 보면 보통의 흰살생선 요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무엇이 이 평범해 보이는 요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일까.


루테피스크를 만드는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잘 말린 대구를 잿물에 4~5일간 담가 불린 다음 찬물에 다시 이틀을 담근다. 이 과정을 거치면 잿물의 강한 알칼리성 때문에 단백질이 용해돼 대구는 형체만 간신히 유지한 채 흐물거리는 젤리처럼 변한다. 이걸 버터를 발라 굽거나 쪄서 먹는 요리가 바로 루테피스크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웨덴(Lutfisk), 핀란드(Lipeäkala), 덴마크(Ludefisk) 등지에서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먹는 음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잿물이라니. 그렇다. 그 '양잿물'의 그 잿물이다. 마시면 죽는다는 그 잿물에 재료를 담근다니. 그러나 안심하시라. 인체에 전혀 해는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 아니겠는가. 북유럽인 들은 도대체 왜 이런 경악스럽다 못해 엽기적인 방법을 대구 요리에 사용하게 된 것일까.



루테피스크의 유래에 대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바이킹이 주인공이다. 과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하던 바이킹족에게 대구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이들은 마당에 나무로 만든 건조대를 설치해 갓 잡은 대구를 말려 겨울을 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을에 다른 부족이 침략해왔다. 마을과 건조장이 불에 타는 등 일대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강풍과 폭우가 쏟아졌고 침략을 피해 달아났다가 돌아온 이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잿더미와 흙탕물로 뒤덮여 있는 걸 보고는 망연자실했다. 혹여 먹을 것이 없나 살펴보던 중 잿물과 흙탕물에 처박혀 있던 대구를 발견했고,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도 없어 잿물에 불어 흐물흐물해진 대구를 물에 잘 씻어서 먹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먹을 만했다는 것. 이후 힘들었던 그 시절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중요한 날이면 그때 그 방식대로 대구를 요리한 것이 루테피스크의 시초라는 설이다.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일랜드의 성인 '성 패트릭(St. Patrick)'이다. 성 패트릭은 시도 때도 없이 아일랜드를 침략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바이킹족들을 독살하기 위해 잿물에 담긴 대구를 그들에게 진상했다. 그런데 이들이 죽긴커녕 오히려 맛이 좋은 대구를 선물했다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독특한 풍미와 맛에 바이킹들은 흡족해했고 이내 고향으로 돌아가 같은 방식으로 대구를 처리해 먹기 시작한 것이 루테피스크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신빙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일단 성 패트릭이 살았던 시대와 바이킹의 아일랜드 침입 시기가 맞질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성 패트릭은 사제가 아닌가. 신을 섬기는 몸으로 그런 극악무도한 대량살상을 계획했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좀 더 그럴듯한 가설도 있다. 잘 염장해 말린 상등품의 대구와는 달리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의 경우 삶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그만큼 땔감인 연료가 많이 소모되는 단점이 있었다. 중세 북유럽인들에게는 땔감도 식량 못지않게 겨울을 나는 필수품이므로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다.  말린 생선을 삶는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물에 재를 푸는 방법이 사용됐고 그것이 오늘날 루테피스크의  형태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오늘날 루테피스크는 겨울 시즌만 되면 북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다. 과거엔 겨울에만 먹었으나 기술 발달에 힘입어 요즘은 사시사철 루테피스크를 즐길 수 있다. 곁들여 먹는 음식이나 조리법은 나라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편이다. 노르웨이는 전통적으로 반숙한 루테피스크에 삶은 감자와 으깬 완두콩, 버터, 구운 베이컨, 캐러멜 맛이 나는 갈색의 염소 치즈를 곁들여 먹는다. 스웨덴은 여기에 베리류와 베샤멜소스를 첨가해 먹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맛을 어떨까. 노르웨이식 루테피스크에 나이프를 갖다 대자 속절없이 쉽게 잘린다. 푸딩을 자르는 듯한 느낌이다. 포크에 잘 고정도 되지 않는 루테피스크를 한 점 입 안에 넣어 보니 식감도 영락없는 젤리다. 포르투갈의 '바깔라우(염장한 대구를 물에 불려 굽거나 튀긴 요리)'와 같은 친척이긴 하지만 식감에 있어선 완벽한 남이다. 잿물에 절였다고 해 곰삭은 생선의 향이나 비릿한 냄새가 나길 은근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밋밋하지만 대구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다고 할까. 먹고 있는 것이 대구 향이 0.03% 정도 함유된 젤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맛이 없다는 것인가. 그런 건 또 아니다. 사실 루테피스크 자체만 보면 심심한 맛이지만 그 흐물거리는 식감이 먹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스스로 가진 향과 맛이 플랫 하다 보니 곁들이는 재료들과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 주연이면서 조연들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할까. 바깔라우의 경우 단연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향으로 존재감을 한껏 뽐내는 것과는 달리 루테피스크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 그러면서 오히려 긴 여운을 선사한다.


루테피스크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니 문득 친한 선배가 멸치국수에 관해 쓴 글 한 대목이 떠올랐다.


'면발을 후루룩 입에 넣는 순간 이 국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할지라도 품위 있는 사람. 능성어나 송로버섯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구실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존경과 경의를 담아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물컹한 루테피스크를 입에 넣는 순간 이 대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경험을 했지만 스스로를 앞으로 내세우지 않는 사람.

바깔라우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적어도 함께 접시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맛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그런 사람'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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