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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버거(Elg Burger) 한 번 드셔 보실래요?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음식방랑기

by 장준우

"차별에 반대합니다"


뜬금없이 웬 차별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해하지 않아도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인종 성별 민족 종교 간 차별만큼이나 '식재료'에 관한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선호와 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별종 취급한다던가 미개 혹은 야만적으로 보는 건 인종 성별을 차별하는 것만큼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음식이 있다. 죽었다 깨어나도 곤충을 이용한 요리는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사람과 그 문화는 존중하려 한다. 한 음식에는 그것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문화나 유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 식재료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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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북유럽의 사슴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문득 과거 당나귀 스테이크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나귀도 소고기나 돼지고기 그 어딘가 즈음에 있는 일반적인 식재료라고 생각했는데 몇몇 분이 못 먹을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그르고 내가 옳다는 건 아니다.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는 거기에 깃들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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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사슴요리를 다루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간단하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이들을 이용한 요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에서 식재료로 사용되는 사슴은 일반적으로 엘크(Elk)와 우리말로 '순록'으로 번역되는 레인디어(Reindeer) 두 종류다. 사슴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꽃사슴의 모양새를 생각해선 곤란하다. 거의 소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엘크와 순록은 같은 사슴과지만 엄연히 종이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양잇과의 호랑이와 사자의 차이 정도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빨간 코를 가진 루돌프는 순록이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온 스벤은 엘크라고 한다면 이해가 빠를까. 둘 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생물학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사슴'으로 묶겠다.


시간을 거슬러 고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가 보자. 원시 게르만족의 주요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여름은 따뜻하지만 겨울이 유난히 길었다. 이같은 환경에서 야생의 순록과 엘크는 혹독한 추위를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소나 닭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은 사슴고기는 영양가 높은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부산물인 털가죽은 옷감으로 활용됐다. 사슴고기는 그들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문화인 것이다. 과거에는 겨울철 생존을 위해 야생의 사슴을 사냥했다. 현재는 다른 가축과 마찬가지로 목장에서 대량 방목되고 있으며 야생 사슴 사냥은 전통문화로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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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고기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과 북유럽권에서 특히 소비된다. 주로 덩어리째 스테이크로 요리하거나 푹 익힌 스튜의 형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테이크로 구운 사슴고기의 맛은 쇠고기에 비해 냄새가 덜하고 단맛이 더 감도는 편이다. 말고기나 당나귀 고기와 비슷한 맛이랄까. 엘크가 더 맛있느냐 순록이 더 맛있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어느 정육점을 가던 엘크 고기를 더 추천했다. 육향이 좀 더 강한 탓에 고기 맛이 더 좋다는 게 정육점 점원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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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심과 안심은 구이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덩어리째 햄으로 가공된다. 이외의 부위들은 자연건조시킨 소시지인 살라미가 되거나 햄버거용 패티로 변신한다. 어디서든 엘크와 순록 살라미로 만든 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맛이 참 독특하다. 돼지로 만든 살라미가 짭짤하면서 감칠맛과 단맛을 주는 것과는 달리 짜고 시큼한 맛이 주를 이룬다. 맛의 강도는 순록보다 엘크 쪽이 한 수 위다. 미리 말해두건대 이탈리아의 살라미를 생각하고 와인 한 잔에 엘크 살라미를 안주 삼아 먹겠다는 생각을 하고 맛을 보면 아마 당혹스러움에 몸서리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지 사람들이 그러하듯 치즈와 함께 빵에 끼워 먹으면 꽤 괜찮은 간식거리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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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음식이 끔찍할 정도로 많지 않은 북유럽에서 그나마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게 엘크와 순록으로 만든 햄버거다. 보통 햄버거용으로 사용되는 패티엔 소금이나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들이 첨가되는데 이 때문에 햄버거에서 엘크나 순록 고유의 맛을 느끼기는 힘들다. 프랜차이즈 버거집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의 범주와는 크게 다르진 않지만 중요한 건 색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경험이니 애교로 봐주도록 하자. 북유럽의 길거리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북유럽을 거닐다 엘크와 순록 요리를 만나면 '귀여운 스벤과 루돌프를 잡아먹다니 야만적이야' 하는 편견은 부디 버리고 한 번 도전 해보길 바란다. 의외로 입맛에 맞아 신세계가 열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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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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