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세바스티안에는 '초코 txoko'란 독특한 모임이 있다. 귀여운 이름과는 달리 최근까지 남성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던 꽤 마초스러운 미식 모임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모임은 처음엔 사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친구들끼리 한 공간을 빌려 노래하고 먹고 마시자고 한 것이 그 출발이다.
1930년대 프랑코 독재정부가 민족주의의 일환으로 표준어인 카스티야 이외의 언어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독자 언어를 갖고 있었던 바스크인들이 정부의 감시를 피해 바스크어를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초코였다. 모임이 주로 지하실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내부 규칙이었지만 가까운 멤버들끼리 모여 마음껏 바스크어 노래를 부르며 민족의 울분을 푸는 곳으로 이용되면서 크게 인기를 모았고 바스크 전역에서 초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코 회원들은 매달 일정액을 회비로 낸다. 그 자금으로 공동주방을 운영하기도 하고 공간을 대여해 파티를 연다. 모임에선 서로 개발한 메뉴나 식자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최신 유행하는 조리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오직 남성들만 입회가 가능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모계 중심 사회였던 바스크 지방에서 남성들이 집구석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초코를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와 아내의 압박(?)에서 탈출한 남자들의 도피처로 출발했기에 여성 참여는 애초부터 금지사항이었다. 최근에는 평등에 입각해 여성도 동등하게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몇몇 엄격한 초코의 경우 아직까지 남성으로만 구성돼있다고 한다.
놀라운 건 이 모임을 통해 사라질 뻔 한 바스크 지방의 많은 전통요리들이 복원됐다는 점이다.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오래된 요리책을 공부하면서 결과적으로 바스크 지역 요리의 다양성과 수준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먹고 마시는 일도 진지해지면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 된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