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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an 25. 2017

레시피는 잠시 덮어 두자, 요리는 '놀이'다

식재료를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식재료를 이해하세요

도대체 식재료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요리학교 선생이나 세계적인 스타 셰프 건 하나 같이 이 말을 빼놓지 않았지만 누구도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학교와 주방 현장을 거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식재료를 이해한다'는 건 그 식재료가 가진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요리란 어떤 식재료에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주는 일이다. 결국 '이해한다'는 건 식재료가 어떤 특성을 가졌으며 어떤 조리법을 주어야 의도한 결과가 나오는지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시피를 볼 때면 항상 궁금했다. 왜 리조토를 만들 때 쌀을 볶아야 할까. 왜 스튜를 만들 땐 항상 맨 먼저 양파와 당근 샐러리를 잘게 썰어 볶는 것일까. 식재료를 이해하는 첫 출발점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 음식에 특정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건 사회문화적 지리적인 요인이 작용했거나 단지 요리를 개발한 이의 취향일 수 있다.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추가 전래되기 전까지 한국 전통 김치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다. 과거 배추를 절일 때 쓰는 소금이 귀한 탓에 비슷한 작용을 하는 고추를 대용으로 넣게 된 것이 오늘날 붉은 김치가 탄생한 이유다. 붉은 김치의 매운맛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건 그다음 일이다. 이는 고추가 가진 캡사이신 성분이 소금과 비슷한 항균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금과 고추라는 식재료를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전래된 것이 고추가 아니라 후추였다면 아마 우리는 후추향 가득한 김치를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리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대개 기존의 레시피를 참조한다. 요리에 대한 기본을 깨우치기는 쉽지만 레시피에만 너무 의존하다보면 요리 실력을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레시피만 외우는 것은 마치 곱셈의 의미를 모른 채 구구단만 외우는 것과 같다. 세상의 모든 레시피를 암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9단까지 외울 줄 알지만 11x12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의 상태와도 같다. 곱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면 그 너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곱셈을 이해하게 되면 그 뒤부터는 어떤 응용문제가 나와도 풀 수 있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식재료를 이해하지 못하면 응용이나 창작은 불가능한 일이다. 식재료의 특성을 이해하면 기존의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사한 기능을 가진 재료를 자유자재로 대입할 수 있게 된다. 단지 남의 요리를 베끼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요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 이해한다는 과정은 쉽지 않은 길이다. 세상에 수천수만 가지 식재료들이 존재하고 인류가 고안해낸 조리법도 수백수천 가지가 된다. 대략 경우의 수를 만들어보아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한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의 모든 식재료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요리 세계에서 경험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요리를 배운다는 건 경험을 통해 식재료의 특성을 점차 이해해 나간다는 것이다. 요리가 도제식으로 전수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승이 가진 경험을 제자가 이어받고 제자는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더하는 것. 요리는 그렇게 진보해왔다.


어떤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보고 자기만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 그것이 식재료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양파를 오래 가열하면 단맛이 난다. 다른 요리에 단 맛을 불어넣기 위해 볶은 양파를 사용할 수 있다. 당근을 푹 익혀도 단맛이 난다. 그렇다면 익힌 당근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요리 공부란 이런 과정이다.


물론 레시피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자 아버지다. 모방을 통해 기본적인 조리법과 식재료 사용법, 아이디어 등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레시피 그 너머에 있는 식재료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식재료들을 만져보고 먹어보고 조리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세상의 어떤 레시피든 '원래부터 그랬던'건 없다. 당신이 보고 있는 그 레시피는 누군가 식재료를 이해하고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당신이 식재료를 이해하고 있다면 더 이상 레시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요리를 만들어 가면 된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가.


당신이 요리사라면 형식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요리사는 버튼을 누르면 지정된 레시피대로만 음식을 만드는 자판기가 아니다. 식재료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요리도 해낼 수 있다. 관습에 자신을 묶어둘 필요가 없다.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요리사'란 예쁘고 보기 좋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요리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를 이해한 바탕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맛의 향연을 만들어 낸 사람, 그런 요리사를 위한 수식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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