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우 Feb 28. 2018

요즘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 이유

탐식과 즐거움의 상관관계



요즘은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일종의 자가실험이다. 그저 눈에 띄는 곳에 가서 기대를 한 껏 낮추고 음식을 대한다.


동네에 ‘45년 전통 옛날 중국집’이라는 꽤 의심스러운 이름의 중국집이 있다. 이 집은 개업할 때도 이런 이름이었을까. 지나만 다니다 하루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들어가서 짜장면을 시켰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군만두를 주문했다.



기대보다 양파가 좀 크긴 했지만 간짜장의 단맛 짠맛 균형은 탁월했다. 좀 더 소스가 뻑뻑하길 기대했지만 뭐 그런대로 먹음직했다. 군만두는 직접 빚어 만든 모양새였다. 여태껏 먹어온 군만두들에 비해 피는 얇았고 바삭하면서 안이 쫄깃했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만두피를 접은 부분 일부가 약간 덜 익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바삭하면서 쫄깃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만두피의 식감을 음미하느라 면이 부는 것도 잊었다.



꽤 많은 양이었지만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불과 1시간 전 즈음 탄수화물을 좀 줄이고 다이어트를 하겠노라 다짐한 게 생각났다. 계산하는 중에 메뉴판을 슬쩍 다시 봤다. 요리를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나오는 ‘무관심성’이란 개념을 꽤 좋아한다. 일체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물론 대상에 대해 100퍼센트 무관심할 수 없다는 철학적 반론도 있지만, 수용자의 이러한 태도가 미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음식이 나에게 잊지 못할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이란 기대로 가득 차게 된 상태, 그것을 탐식이라 부르던가. 더 좋은 맛, 맛 그 자체만 추구하면 많은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맛을, 음식을 엄격히 평가하기 시작하면 스스로에게도 엄격해지게 된다. 어느새 즐거움은 사라지고 모든 걸 평가하려는 태도로 일관되게 된다. 이런 사람이 결함 투성이지만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되려 지나친 관심을 낮추고, 맛이 있을 거란 기대를 낮추면 음식은 의외로 소탈하게 말을 걸어온다.


요즘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식의 의미 @장준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