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과 즐거움의 상관관계
요즘은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일종의 자가실험이다. 그저 눈에 띄는 곳에 가서 기대를 한 껏 낮추고 음식을 대한다.
동네에 ‘45년 전통 옛날 중국집’이라는 꽤 의심스러운 이름의 중국집이 있다. 이 집은 개업할 때도 이런 이름이었을까. 지나만 다니다 하루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들어가서 짜장면을 시켰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군만두를 주문했다.
기대보다 양파가 좀 크긴 했지만 간짜장의 단맛 짠맛 균형은 탁월했다. 좀 더 소스가 뻑뻑하길 기대했지만 뭐 그런대로 먹음직했다. 군만두는 직접 빚어 만든 모양새였다. 여태껏 먹어온 군만두들에 비해 피는 얇았고 바삭하면서 안이 쫄깃했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만두피를 접은 부분 일부가 약간 덜 익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바삭하면서 쫄깃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만두피의 식감을 음미하느라 면이 부는 것도 잊었다.
꽤 많은 양이었지만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불과 1시간 전 즈음 탄수화물을 좀 줄이고 다이어트를 하겠노라 다짐한 게 생각났다. 계산하는 중에 메뉴판을 슬쩍 다시 봤다. 요리를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나오는 ‘무관심성’이란 개념을 꽤 좋아한다. 일체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물론 대상에 대해 100퍼센트 무관심할 수 없다는 철학적 반론도 있지만, 수용자의 이러한 태도가 미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음식이 나에게 잊지 못할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이란 기대로 가득 차게 된 상태, 그것을 탐식이라 부르던가. 더 좋은 맛, 맛 그 자체만 추구하면 많은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맛을, 음식을 엄격히 평가하기 시작하면 스스로에게도 엄격해지게 된다. 어느새 즐거움은 사라지고 모든 걸 평가하려는 태도로 일관되게 된다. 이런 사람이 결함 투성이지만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되려 지나친 관심을 낮추고, 맛이 있을 거란 기대를 낮추면 음식은 의외로 소탈하게 말을 걸어온다.
요즘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