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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an 19. 2019

뜻밖의 위대(胃大)한 여정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모든 것은 어느 봄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발신자는 서울대학교 푸드 비즈니스랩의 문정훈 교수였다. 내용인즉슨 세계의 토종닭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처음에 닭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귀를 의심했다. 닭이라니. 그것도 토종닭이라니. 소나 돼지도 아닌데 뭔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올까 싶었다. 


닭을 다뤄본 건 이탈리아 요리학교 시절 몇 번이 전부였다. 물론 이탈리아는 닭 요리에 관한 풍부한 유산을 갖고 있는 나라다. 다만 해산물이 널린 시칠리아의 주방에서 닭이 레스토랑 메뉴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닭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식재료였다. 


무언가에 대해 뭔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모른다는 이야기다. 호기심은 무지에서 싹트는 법. 닭에 대해 깊이 알아볼 좋은 기회를 차 버릴 이유는 없었다. 프렌치 비스트로 루블랑의 신민섭 셰프와 먹거리를 둘러싼 연구를 하는 문정훈 교수, 그리고 요리하고 글 쓰는 세 남자가 닭을 찾아 떠나는 ‘치킨 로드 트립’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백건대 여정을 떠나기 전까지 닭이라고는 딱 두 종류만 있는 줄 알았다. ‘작은 닭'과 '큰 닭'. 상상할 수 있는 닭요리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치킨이나 한 그릇 삼계탕 정도랄까. 교외의 한적한 00 가든이나 처가댁에 가야만 토종닭이라고 부르는 큰 닭을 먹을 수 있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은 놀랄 만큼 닭에 관한 한 철저하게 이분화돼있다. 생닭을 사려는 소비자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다. 일반 육계를 구입하느냐, 아니면 토종닭을 사느냐다. 육계의 경우  통 마리나 다리와 가슴살, 날개 등 부분육으로 판매되는 반면 토종닭은 ‘삼계탕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팩에 넣어 팔린다. 토종닭은 ‘질기다’는 편견 때문에 오래 푹 삶는 것 외에 다른 요리를 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소비되는 품종은 코니시 크로스(Cornish Cross)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유전적 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품종이다. 코니시 크로스의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는 산업적 관점에서 닭 품종 개량이 연구됐다. 시작은 가슴살이 비대하게 발달한 영국의 흰 닭 코니시 품종과 육질 와 계란 맛이 좋은 미국의 화이트 플리머스 록 품종을 교배하면서부터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돌연변이의 시대’라고 할 만큼 유전학자와 육 종가들이 연구에 몰두했는데 그 결과 나타나게 된 게 코니스 크로스, 브로일러(Broiler:구이용 닭)라고도 불리는 육계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부의 닭은 코니시 크로스에서 유전적으로 더 선별된 종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 어떤 닭 보다 빠르게 자라는 덕에 농가들은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치킨 열풍이 분 것도 이런 배경 덕분이다.  


이렇게만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같지만 대신 중요한 걸 잃었다. 바로 종 다양성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토착 품종의 닭들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밀려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다. 종 다양성 감소 문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식재료의 다양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다는 건 한정된 종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끔찍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식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가 당장 먹을 수 있는 닭이란 육계가 아니면 토종닭으로 불리는 한협 3호뿐이다.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으면 요리사 입장에선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고, 소비자로서는 서로 다른 재료의 차이를 이해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잃게 된다. 환경보호론자가 굳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종 다양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독점이 나쁘다는 건 누구나 안다. 백번 양보해도 한 종류의 닭만 지구 상에 남는 건 닭에게도 사람에게도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말로 닭 품종마다 눈에 띄는 맛의 차이는 있는 것일까. 한국이 닭에 관해 이분화되어 있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그곳에서는 코니시 크로스가 아닌 다른 닭을 어떻게 키우고 요리해 먹고 있을까. 



여정은 이런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고가의 프랑스 브레스 닭부터 드롬의 뿔닭, 오래 키워 닭의 풍미를 극대화 한 스페인의 토종닭 핀타 핀투, 적극적인 토종닭 재건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의 나고야 코친, 그리고 한국의 토종닭 한협 3호를 키우는 농가와 제주 재래닭을 키우는 농가까지. 총 4개국 6종류의 품종, 20여 가지의 닭요리를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며 치킨이나 백숙 말고도 닭을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식재료와 음식의 다양성을 위해선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닭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음식을 어떻게 대하고 생각해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준비가 됐다면 함께 닭을 찾아 떠나는 위대(胃大)한 여정을 시작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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