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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Jan 26. 2019

닭 중의 닭, 프랑스의 브레스 닭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프랑스의 브레스 닭에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닭의 왕 또는 여왕, 가장 비싸고 맛있는 닭, 먹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엄격한 원산지 보호 인증(AOC)이 붙은 최초의 닭 등. 심지어 새빨간 벼슬과 하얀 깃털, 그리고 파란 발은 영락없이 프랑스 국기의 색과 같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표 닭이라는 데에는 적어도 프랑스 국내에서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브레스 닭 협회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브레스산 닭이 처음 언급된 건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보이 공국의 군대를 무찌른 프랑스의 트뤼포 후작에게 브레스 주민들이 24마리의 '살찐 닭'을 진상했는데 이것이 '브레스의 닭'으로 기록됐다.



이후 17세기 브레스 지역에 머무른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앙리 4세가 브레스 닭을 즐기면서부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앙리 4세가 했다는 '일요일이면 모든 국민들이 닭고기를 먹기를 원한다'라는 말도 브레스 닭을 먹고 감명받은 후에 했다는 설도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브레스 닭을 두고 '닭의 여왕, 왕의 닭'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대체 브레스 닭은 다른 닭과 무엇이 다른 걸까. 우선 눈으로 보기에 앞서 먼저 입으로 확인하고자 미식의 도시 리옹 인근에 위치한 <폴 보퀴즈> 레스토랑을 찾았다.


현대 프랑스 요리의 황제, 요리계의 교황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폴 보퀴즈는 버터와 크림을 가급적 자제하고 지역의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누벨 퀴진의 선구자다.



폴 보퀴즈는 그가 살던 주변의 식재료였던 브레스 닭에 주목했다. 소박한 닭요리도 조리법과 좋은 닭을 쓰면 최고급 요리로 변모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1960년대 그는 각국의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과 잡지 등 대중매체를 통해 브레스 닭을 소개, 시연하고 세계를 누비며 그 우수성을 알렸다. 스스로 브레스 닭 전도사가 된 셈이다.


브레스 닭을 프랑스를 너머 세계적인 식재료로 가치를 끌어올린 폴 보퀴즈는 2018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셰프들이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보퀴즈는 이제 없지만 미슐랭 3 스타를 50년째 유지하고 있는 폴 보퀴즈 레스토랑은 그 유산을 간직한 채 그 자리 그대로 우뚝 서 있다.




폴 보퀴즈의 대표 브레스 닭 요리는 돼지 방광에 넣고 쪄 화이트 와인과 버섯으로 만든 크림소스를 끼얹어 만든 'Volaille de bresse en vessie mère fillioux'다. 돼지 방광이라는 단어에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지만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요리를 할 때 맡게 되는 향은 향기롭지만 이는 실은 재료에서 풍미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방광에 싸는 조리법은 브레스 닭이 갖고 있는 고유의 향과 육즙을 최대한 보전하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닭이 갖고 있는 풍미를 공기 중에 조금이라도 날려버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단백질을 조리하는 모든 요리가 그러하듯 닭 요리도 온도가 핵심이다. 소나 돼지고기의 등심과 안심, 갈빗살과 다릿살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각 부위에 맞는 적정 익힘 온도도 다 다르다.


닭도 부위별로 익는 속도와 적정 익힘 온도가 다르다. 다만 닭만큼은 크기가 작기에 한 마리 통째로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슴살과 다리살이 적정하게 익을 수 있는 온도를 맞추는 게 관건이다. 가슴살 기준으로 익히면 다리가 덜 익게 되고 다리를 기준으로 익히면 가슴살이 과도하게 익어 퍽퍽해지게 된다.


보퀴즈는 닭 다리가 겨우 익을 정도를 유지하면서 가슴살이 가능한 촉촉해질 수 있도록 풍미와 습기를 가두어 조리하는 방식을 나름 고안해낸 것이다.


돼지 방광 안에서 풍미를 고스란히 지닌 채 익은 브레스 닭의 맛은 실로 놀라웠다. 어떤 맛인가 하면, 정말로 제대로 된 '닭의 맛'이었다. 닭에서 닭맛이 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겠만, 닭이라는 식재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닭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여태까지 접해 본 닭고기의 풍미가 100이라고 한다면 돼지 방광에 쪄서 요리한 브레스 닭의 풍미는 200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 입 베어 문 가슴살에서는 육즙이 터져 나왔고 흔히 생각하는 퍽퍽한 가슴살의 질감과는 전혀 달랐다. 요리사의 관점에서 볼 때 닭의 풍미를 완벽하게 살린 요리였다. 곁들이는 모렐 버섯과 진한 크림소스는 그저 심심하지 않게 거들 뿐 이 요리의 진정한 주인공은 브레스 닭 그 자체였다.


보퀴즈의 식당을 뒤로하면서 브레스 닭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갔다. 다른 조리법을 이용한 브레스 닭 요리는 어떨까. 조리법도 조리법이지만 닭 자체가 갖고 있는 폭발적인 풍미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며 브레스 닭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브레스 닭의 고향인 브레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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