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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Feb 02. 2019

브레스 닭의 성지에서 맛 본 '왕의 닭요리'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보나(Vonnas)는 프랑스 동부 브레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인구 3천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중 한 명인 조르주 블랑의 이름을 딴 ‘조르주 블랑 빌리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르주 블랑은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외식 사업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보나에서 이미 식당을 운영 해왔지만 전 세계 미식가들이 찾는 성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조르주 블랑의 수완 덕이었다.


대를 이어온 레스토랑은 1929년부터 이미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한 번도 잃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조르주 블랑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건물들을 사들여 식당과 호텔로 개조하는 한편 요리에 깊이를 더했다. 결국 1981년 자력으로 미슐랭 별 세 개를 따냈고 그 이후 조르주 블랑은 프랑스 최고의 셰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보나 마을 한편에 자연스럽게 조성돼있는 조르주 블랑 빌리지는 마치 '미식 테마파크'에 온 듯한 기분을 준다. 고급요리부터 가정식까지 다양한 수준의 요리를 맛볼 수 있음은 물론 1872년 그의 증조부가 작은 마구간을 개조해 식당을 운영해왔던 한 가족의 역사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마을에는 조르주 블랑 산하의 크고 작은 다른 식당과 숙박시설, 식료품과 잡화점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와인샵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함께 온 누군가는 '남은 여생을 보내기에 완벽한 곳'이라고 평할 정도.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만 있으면 이 모든 것들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우리는 안다. 그 두 가지를 완벽히 갖추기 힘든 게 인생이라는 걸.



곳곳엔 닭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닭과 연관이 있거나 닭요리로 유명한 곳임을 짐작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운의 영주인 조르주 블랑은 1986년부터 브레스 닭 협회장이기도 하다.


생산자 협회의 장을 요리사가 맡는다는 건 사실 흔치 않은 일이다. 생산자와 요리사는 서로 입장이 다르다. 요리사는 높은 품질의 닭을 가능한 낮은 가격에 받기를 원하지만 생산자는 힘들게 키운 닭을 높은 가격에 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현재 브레스 닭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Kg당 18유로 선에 가격이 형성돼있다. 일반 닭이 Kg당 3~4유로 정도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꽤 비싼 편이다. 브레스 닭은 보통 1.3kg 내외로 소매점에서 팔린다. 브레스 닭 한 마리를 산다고 하면 대략 3만 원쯤은 지출할 각오를 해야 하는 셈이다.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에 먹는 1.8Kg의 브레스 암탉은 무려 마리당 5만 원에 육박한다. 아무리 음식을 사랑하고 닭을 애정 하는 프랑스라지만 한 마리에 3~5만 원이 넘는 생닭에 과연 소비자들이 지갑을 흔쾌히 열까.


셰프를 협회장으로 선택한 브레스 닭 협회의 결정은 옳은 선택이었다. 생산자가 아무리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이 좋다고 외친 들 소비자들이 그 외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접점에 있는 건 결국 요리사라는 걸 그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브레스 닭을 전 세계에 알린 폴 보퀴즈의 뒤를 이어 1970년대부터 열렬한 브레스 닭 전도사가 된 조르주 블랑은 협회장이 되면서 브레스 닭의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 거장들의 노력 덕에 일류 식재료서의 가치를 얻은 브레스 닭은 더 이상 다른 닭들과 경쟁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브레스 닭이라는 브랜드가 곧 '최고급 닭'이란 대명사가 된 것이다.


브레스 닭의 가치가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생산자들도 안정된 이익을 바탕으로 품질관리에 주력할 수 있게 됐고, 덩달아 조르주 블랑 자신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폴 보퀴즈가 브레스 닭을 돼지 방광에 넣고 찐 요리로 유명세를 얻었다면 조르주 블랑의 시그니처 브레스 닭 요리는 소금 빵 반죽에 넣고 구운 'Poularde de Bresse cuitre en croute'다. 재료를 소금에 파묻어 굽는 요리는 큰 생선 요리에 주로 쓰는 방법이다. 열이 재료 안에 고루 전달되면서 간도 함께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금과 밀가루 반죽으로 브레스 닭을 꼼꼼히 싸는 방식은 폴 보퀴즈의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가능한 재료를 고루 익히면서 풍미가 빠져나가지 않게 단단히 여 매려는 목적인 것이다. 차이는 있다. 방광에 브레스 닭을 넣고 요리한 폴 보퀴즈의 방식이 찜에 가까웠다면, 조르주 블랑의 방식은 구이와 찜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할까.


노릇하게 잘 익은 껍질의 풍미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닭의 구운 껍질과는 다른 식감을 보였다. 씹을 때마다 기분 좋게 지방이 녹아내리는 경험은 먹어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맛이었다. 분명 그동안 일반적으로 먹어왔던 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브레스 닭만의 풍미였다.


가슴살은 흡사 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탄력이 있었고 다릿살은 가슴살과 비교해 확연히 식감이 탄탄하면서 진한 닭의 풍미를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폴 보퀴즈의 요리와 마찬가지로 갖은 호화로운 부재료들이 존재하지만 역시 요리 안에서 브레스 닭은 존재감이 분명히 느껴지는 힘을 갖고 있었다.



폴 보퀴즈와 조르주 블랑 레스토랑에서 맛 본 브레스 닭 요리는 브레스 닭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화려한 고급 요리였다. 닭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조리법을 통해 비싸게 주고 사 먹을 만한 닭 요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마도 18세기 제왕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 왕이 먹던 닭 요리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호사스럽고 정성스러운 왕의 닭요리가 이렇다면 가장 단순한 닭요리는 어떨까. 단순하게 소금과 후추만 쳐서 구워낸다면 재료 자체의 맛을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왕의 닭요리를 먹고 나자마자 서민의 닭 요리를 궁금해하는 꼴이라니.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닭이란 식재료의 매력에 서서히 중독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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