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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Feb 09. 2019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닭의 맛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브레스 닭을 키우는 특별한 농가가 있다고 해서 먼 길을 달려 Domaine de la Perouse Earl 농장을 찾았다. 이곳은 도미니크 멜이 운영하는 브레스 닭 농장이다.


보통의 닭 농가에서는 병아리를 사와 사육만 한 후 일정 시점과 크기가 되면 도계장으로 닭을 넘긴다. 도계장에서 도축된 닭은 유통업자를 통해 소매점이나 식당으로 유통된다. 병아리 키우는 사람과 닭 키우는 사람, 닭 잡는 사람, 닭 파는 사람이 따로 있는 구조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효율과 위생 때문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오로지 사육에만 집중할 수 있고 직접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 좋다. 키우기만 하면 도계장에서 닭을 사가니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모로 각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편리한 구조인 셈이다.



도미니크의 농장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고 사육과 도축, 그리고 유통까지 혼자 도맡아서 하는 독립형 농장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독립형 농장이지 여기엔 큰 수고가 뒤따른다. 모든 걸 관리한다는 건 그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의 대답을 듣기에 앞서 눈앞에 광활히 펼쳐진 방목장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이유를 알 것만도 같았다.



브레스 닭 품종이라고 해서 모두가 브레스 닭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엄격한 원산지 보호 인증(AOC)을 거친 브레스 닭만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다.


품종은 당연히 브레스 닭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정해진 지역에서만 자라야 한다. 35일간 계사 안에서 키우다가 그 이후에는 반드시 방목을 시켜야 한다. 닭 한 마리당 10제곱미터, 그러니까 3평의 고시원 방만한 목초지가 필요하며 사료는 반드시 브레스에서 생산된 옥수수와 밀, 유청이어야만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최소한 4개월을 길러야 하고 체중은 1.2kg 이상 되어야 한다. 도계 2주 전에는 케이지에 넣고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여 지방 함량을 높여야 하고 이후 2~4주가량 소화기관만 제거한 채 저온냉장고에서 숙성을 해야 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레스 닭 품질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의 육계는 대개 생후 35일 전후에 도축된다.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자라는 코니시 크로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빨리 자라다 보니 근육이 치밀해질 새가 없고 닭 자체의 선명한 풍미를 가질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고기는 연하고 어느 부위를 먹어도 눈에 띌만한 큰 차이 없이 전반적으로 밋밋한 맛을 낸다. 반면 방목해서 오래 키운 닭은 풍미가 진하고 육질이 단단하다. 큰 닭은 질겨서 먹기 힘들다는 인식이 여기서 나왔다.



브레스 닭은 분명 오래 키운 닭이다. 하지만 오래 키운 닭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택했다. 충분한 방목을 통해 건강하고 오래 자라게 한 다음, 모자라는 지방은 집중 비육을 통해 보충하고 단단한 육질은 숙성을 통해 해결한 것이다.


숙성고를 열어 보이는 도미니크 조차 "숙성을 거치지 않은 브레스 닭은 먹지 못한다"라고 했다. 키우기 까다롭고 사후에 손이 많이 가지만 최고의 품질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크가 독립형 농장을 운영하며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이런 정성과 노력이 깃든 자신의 브레스 닭을 한 마리라도 허투루 소비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도미니크처럼 독립형 농장을 운영하는 농가는 전체 브레스 농가 중 20%에 달한다. 대형 도계장의 규모의 경제와도 경쟁이 가능한 건 브레스 닭이 갖고 있는 가치 덕분이다. 더 나은 방식과 더 좋은 마음으로 키른 닭에 대한 가치를 요리사들이, 소비자들이 인정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레스 닭도 다 같은 브레스 닭이 아니라 '도미니크 농장의 브레스 닭'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인식된다. 전체 2천 마리 정도를 유지하면서 일주일에 200~300마리를 도축하는데 인근 리옹과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과 계약이 되어 있어 물량이 남는 일은 없다고 한다.



식재료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은 이처럼 중요하다. 여기에는 품질을 끌어올리는 생산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요리사의 힘,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생산자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가치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요리사가 아무리 애를 써도 품질이 낮은 식재료로는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가치를 인정하고 동시에 지갑을 기꺼이 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벌레를 쪼아 먹으며 양과 함께 뛰어다니는 브레스 닭이 한편으로는 부럽게도 느껴졌다. 사람을 경계해 잽싸게 뛰어다니는 브레스 닭은 꽤나 건강해 보였다. 도미니크는 농장에서 닭이 질병에 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독수리나 여우의 침입 말고는 닭이 도축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없다는 게 도미니크의 설명이다.


농장 견학을 마치고 나자 도미니크가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메뉴는 브레스 닭을 통째로 오븐에 구운 로띠. 브레스 닭 본연의 풍미가 궁금했던 찰나 더할 나위 없는 찬스였다.



필요한 건 브레스 닭과 소금 후추, 그리고 오븐뿐. 브레스 닭 겉과 안 쪽에 골고루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도미니크에게 겉에 오일은 바르지 않냐고 물었다. 오븐에 고기를 굽는 경우 껍질과 같은 겉면을 바삭하게 굽기 위해 대개 오일을 발라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닭 자체의 지방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리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구울 때 가슴살이 너무 익지 않도록 익히는 중간에 꺼내 잘라 놓는다는 점이었다. 과조리가 되면 어떤 고기든 육즙이 마르고 퍽퍽해진다. 닭의 가슴살과 다리살은 익는 속도와 정도가 각기 다르다. 통째로 굽는 로띠라고 해도 가슴살은 62도까지, 다리살은 75도 이상이 될 때까지만 익히는 게 도미니크의 노하우다.



요리를 시작한 지 약 2시간 후. 오븐에서 나온 브레스 닭 로띠는 보기 좋게 구릿빛으로 그을려져있었다. 마당이 보이는 야외에 걸터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빨간 브레스닭 앞치마를 두른 도미니크는 능숙한 칼놀림으로 닭을 해체한 후 접시에 덜어 담았다. 보고만 있어도 빨리 맛보고 싶어 현기증이 날뻔했다. 


단지 소금과 후추만 가미했을 뿐인 도미니크의 브레스 닭 로띠는 혀가 의심되 정도로 놀라운 맛이었다. 폴 보퀴즈나 조르주 블랑에서나 맛봤던 육즙 가득한 최고급 브레스 닭요리와 맛에 있어서는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흘러나온 지방을 소스 삼아 살점을 적시니 별다른 소스가 필요 없었다. 닭의 진한 육향과 탄성있는 식감, 깊게 배여나오는 지방과 껍질의 고소함. 문자 그대로 우리는 정신없이 접시를 비웠다.

 


식사를 마무리할 즈음 도미니크는 시가를 꺼내 피우며 말했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만큼 내가 키우는 닭들도 자유롭게 살다가 가는 게 자연의 순리 아닐까.

우리가 닭을 먹는다는 건 그 닭의 인생을 흡수하는 일이야.

내 몸의 일부가 되는 닭이 행복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나는 단지 그걸 돕는 역할일 뿐인 거고." 


그날 우리가 먹었던 닭은 그냥 닭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가 키워낸 자유로운 닭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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