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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Feb 16. 2019

닭간의 놀라운 변신

<치킨 오디세이:위대(胃大)한 여정>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리옹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미식의 도시'란 이름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물자와 사람이 드나들수록 새로운 식문화가 잉태되기 마련이다. 대개 음식이 발달하는 지역의 특징은 교통의 요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쪽의 론 강과 북쪽의 손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리옹은 예로부터 인근 지방의 물자가 모이는 거점이었다. 남부의 해산물과 동부의 유제품, 북부의 와인, 서부의 농산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풍부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로 이름난 지역이다. 



리옹 시내에 위치한 '르 슈프렘'은 뉴욕의 유명 셰프 '다니엘 불리'에서 수련하던 프랑스인과 한국인 커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닭가슴살을 뜻하는 '슈프렘'이란 식당 이름에서 알아챌 수 있듯 이 식당의 주력은 바로 브레스 닭이다. 



뉴욕의 다니엘 불리에서 일하던 그레고리 셰프와 이윤영 셰프가 리옹에 자리 잡게 된 건 스승인 다니엘 불리의 영향이 컸다. 르 슈프렘의 투자자이기도 한 다니엘 불리의 고향이 리옹 인근의 작은 마을이었고 그는 두 제자에게 리옹에 정착할 것을 권했다. 주변의 텃세도 심했고, 식재료가 뉴욕과는 달라 재료를 구하고 메뉴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그들은 리옹에 정착한 지 2년 후에나 식당을 열 수 있었다. 슬럼가 지역에 겨우 식당 자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곳은 우연찮게도 30년 정도 영업한 브레스 닭 전문식당이 자리하던 곳이었다.



두 셰프가 처음 브레스 닭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전통을 잇는다는 의무감보다는 식재료로써의 매력 때문이었다. 다른 닭과는 확연히 다른 풍미와 맛에 매료된 것이다. 브레스 닭 대신 다른 지역의 시골닭으로 같은 메뉴를 만들어 봤지만 결과물은 많이 달랐고,  미국에서 메뉴 시연을 할 때 대체할 닭이 없어 몰래 가져가 쓰기도 했을 정도로 브레스 닭은 그들에게 특별했다.

 


르 슈프렘에서 사용하는 브레스닭은 특정한 농가의 것만 사용한다. 이들도 처음에는 브레스 닭이라는 브랜드만 믿고 유통업자가 주는 대로 썼는데 매번 품질이 다름을 느꼈다고 한다. 브레스 닭의 발에 채워진 발찌에는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좋은 품질의 브레스 닭의 발찌를 확인하면 항상 특정 생산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브레스 닭이라도 어떻게 사육하고 도축했냐에 따라 품질에 우열이 있음을 깨닫고 그때부터 좋은 품질을 제공하는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르 슈프렘에서 맛본 요리 중 인상적이었던 건 닭 간으로 만든 커스터드푸딩의 일종인 갸토 드 푸아 블론드(gateau de foie blond)다. 리옹 지방의 전통요리 중 익힌 닭 간 요리에서 착안한 이 요리는 신선한 닭간과 계란, 가슴살, 생크림 등을 곱게 갈아 익혀 만든다. 


간은 동물의 내장 중에서도 극도의 풍미를 자랑한다. 르 슈프렘에서 받는 닭은 소화기관만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들어오는데 그중에는 간도 포함돼 있다. 식재료를 허투루 버리는 부분 없이 활용하기 위해 선택한 요리인 셈이다.


원재료의 차이는 최종 결과물의 맛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일반 닭과 브레스 닭의 간 풍미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같은 브레스 닭일지라도 닭간의 품질에 따라 다르다는 게 그레고리 셰프의 설명이다. 브레스 닭 간으로 만든 커스터드 푸딩은 첫맛은 부드럽지만 서서히 올라오는 진한 풍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두 셰프의 요리는 브레스 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닭 껍질을 넓게 펴 바삭하게 구워낸 튀일, 가슴살과 푸아그라 등을 함께 부드럽게 갈아낸 속을 껍질로 동그랗게 말아 익혀낸 '도당 드 볼라이 드 브레스 팍시'는 두텁고 탄력있는 브레스 닭 껍질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요리였다.



살코기와 껍질, 내장을 사용하고 난 후 남는 머리와 발, 뼈는 소스의 바탕이 되는 육수로 활용됐고 지방조차 풍미가 좋아 기름 대용으로 사용됐다. 물론 비용 절감과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경제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그것도 각 부분들이 단일 식재료로써 가치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잘 키운 좋은 닭은 쓸 데도 많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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