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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품은 비밀의 수영장, 에메랄드 풀

by 리안

늦은 밤, 아오낭 거리를 산책하다가 문득 현지 여행사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예약이 되려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들어간 작은 부스에서 우리는 뜻밖의 ‘마감세일’을 만났다. 아, 여기에도 마감세일이 존재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저렴한 가격으로 다음 날 맹그로브 숲 카약킹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여행운, 오늘도 만렙.





다음 날 아침 9시, 호텔 앞으로 여행사에서 보낸 썽태우(현지 소형 트럭 택시)가 도착했다.

우리는 함께 투어를 하게 된 중국인 부부와 눈인사를 나누며 투어를 시작했다. 가는 길이 매연과 찌는 날씨 때문에 힘들 법도 한데, 아이는 처음 타보는 뻥 뚫린 썽태우에 신이 나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반팔에 선글라스를 낀 젊은 가이드 친구들이 반겨주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구명조끼를 입고, 드디어 카약에 올랐다.

구성은 나-아이-남편. 노 젓는 담당은 남편.
제주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던 실력을 발휘해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옆 팀들은 노 젓는 게 익숙지 않아 헉헉대는 모습이었고, 결국 가이드들이 직접 카약에 올라타 대신 노를 저어주었다.

남편이 은근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 가족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록이 무성하게 얽히고설킨 숲 사이로 잔잔한 물길이 이어지고,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 위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나무들은 마치 다른 세계의 문을 연 듯했다.


"여긴… 진짜 무슨 영화 속 세상 같아."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물살은 고요하고, 공기는 촉촉하고, 새소리와 물소리만이 들리는 그 순간들.

세상 시끄러운 일들은 모두 멀어졌다. 우리 셋, 그리고 자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천천히 노를 저으며 크리스털 풀, 에메랄드 풀, 블루 라군을 돌아보았다.
마지막 코스로는 에메랄드색 물빛이 아른아른 빛나는 풀에서 수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풀 속엔 작은 물고기들도 있었고, 수면 아래로 뻗은 나무줄기들 사이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이 아닌 판타지 세계에 잠수한 느낌이었다.


물속에서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 지금 진짜 어디에 와 있는 걸까?





집에 돌아온 지금도, 아이와 종종 그날을 추억한다.
“엄마, 거기 물고기 진짜 많았지? 나무 사이로 막 지나가고.”
“응, 엄마는 그날 아빠가 제일 멋있었어.”


그래, 그날 아빠는 최고의 노 젓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자연에 취한 사람이었고, 아이는 온몸으로 기억을 담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잊을 수 없는 하루를 함께한 ‘모험가’였다.
어디에서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

판타지 세계를 다녀온듯한 마법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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