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싱가포르라는 찜통

누가 도시에 닭을 풀었나

by 리안

우리 가족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짐은 캐리어 세 개, 하지만 수하물 하나는 텅 비어 있었다. 이동이 잦은 일정이라 짐을 최소화한 덕분이다.





비행기가 이륙 후 안정권에 접어들자 기내식이 나왔다.

아이는 아동식, 나는 해산물 특별식을 신청해 두었는데, 기대했던 연어가 메인으로 나와 기분이 좋았다. 아동식은 아이들이 좋아 할 만한 간식이 포함되고, 우선 제공되는 장점도 있어 꽤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싱가포르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6시간.

기내식을 먹고, 영화를 보다가 잠을 청해보았다. 그런데 허리도 쑤시고 목이 너무 불편했다.


'비즈니스석에서는 편하게 잘 수 있을까?'

하고 잠시 부러운 생각이 스쳤지만,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어느덧 창밖으로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웨스틴 호텔은 포숙(포인트 숙박)의 성지라고 불린다.

웨스틴 호텔은 프로모션으로 받은 무료 숙박권에 그동안 모아둔 포인트를 더해서 머물 수 있었다.


평소라면 1박만 하기에도 무서울 금액이지만 계획형 인간인 나의 준비로 우리 가족은 4일을 머물 수 있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두고 곧장 관광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기 때문에 몰랐었는데, 싱가포르는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늘에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바람은 뜨거워 오히려 안 부는 게 나을 정도였다.


며칠 전 찜기에 만두를 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의 만두가 된 기분이었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찜통 같았다.




그래도 랜드마크는 가봐야지!

우리는 힘을 내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관광지, 머라이언 파크로 향했다.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다.


파란 하늘, 뜨거운 햇살, 열기가 올라오는 바닥, 그리고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에너지가 되어 절로 신이 났다.


반면에, 남편과 아이는 더위도 많이 탈뿐더러 원래도 집 밖을 나오면 기운이 쭉쭉 빠진다 말하는 집돌이 들이다.


이후 아이는 머라이언 파크를

"뜨겁고 끈적끈적하고 시끄러운 곳"

이라고 표현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이때 찍은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은 뜨뜻미지근한 미소를 짓고 있다.




머라이언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송파 바쿠테'가 있었다. 15분이면 도착한다는 구글 지도를 보고 우리는 호기롭게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무더위 속에서 15분을 걷는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나는 에너지가 자동으로 충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 집돌이들은 이때 이미 모든 에너지가 방전이 되고 만다.




하지만 아이의 기운이 갑자기 솟구친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닭'을 발견했을 때다.


걷다가 더위에 지쳐, 가는 길에 보이는 공원 그늘에서 잠시 쉼을 청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빅토리아 콘서트홀(Victoria Concert Hall)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열리는 극장과 콘서트 홀이 자리한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닭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엄마! 닭이야!"


외침과 동시에, 방전됐던 아이는 갑자기 닭을 잡겠다며 냅다 뛰어가기 시작했다.

더워서 못 걷겠다던 아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닭을 쫓으며 공원을 몇 바퀴나 뛰어다녔다.


높은 빌딩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빅토리아 콘서트홀과, 초록초록 나무 아래 닭을 쫓는 어린이.

그 광경이 재미있어 우리 부부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두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여행 기간 동안 일기를 쓰자고 했는데, 이날의 일기에는 역시나 닭을 못 잡은 아쉬움이 담겨있다.




바쿠테를 먹고 난 후에는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비행의 피로와 오전 일정의 피로가 겹쳐 우리는 말 그대도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저녁엔 웨스틴 호텔 뒤편 '라우파삿 사테 거리'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한국 예능에 자주 등장한 덕분인지,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 마치 반쯤 한국 거리 같았다.


이곳의 매력은 단연 사테 소스! 그냥 먹으면 캠핑장에서 구워 먹던 익숙한 맛일 수도 있지만, 사테 소스에 푹 찍는 순간 평범한 꼬치구이가 이국적인 별미로 변신한다. 싱가포르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사테 소스는 필수다.


거기에 싱가포르의 야경은 최고의 조미료가 되어 여행자들의 저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