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언제 가?
지방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 놀이동산 방문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역에 놀이동산이 있어 한 번 다녀오긴 했지만,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를 놀이동산이라 알고 자라온 내게는 뭔가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아이에게 '놀이동산'을 알려주고 싶었다. 때문에 싱가포르에 온 이상,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은 우리 가족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 코스였다.
싱가포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는 반드시 타야 하는 어트랙션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트랜스포머'이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만큼 대기 줄이 길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이른 아침부터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그 열기에 합세해 인파 속에 섞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장하자마자 목표는 하나, 트랜스포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덩달아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뛰었건만,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서 대기할 수 있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나올 땐 줄이 건물 밖까지 이어져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다.
약 20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
탑승하자마자 스크린이 켜지고, 뜨거운 바람과 함께 4D로 체험이 시작됐다.
마치 범블비를 타고 함께 전장 한가운데 뛰어든 기분이 들었다. 현실과 착각할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다.
단언컨대, 트랜스포머는 내가 타 본 놀이기구 중 최고다!
세 번째 놀이기구를 타고 나와서 아이가 한 말이다.
이제 막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즐겨볼까 하고 있던 나에게는 천청벽력과도 같은 물음이었다.
'기다림에 힘들어서일까? 더위에 지쳤나? 아니, 설마 재미가 없나?'
일단 식당에 들어와 간단히 밥을 먹이며 아이를 달래 보기로 했다. 밥도 먹고 시원한 실내에서 쉬다 보면 기운이 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이는 밥을 먹고 나서 잠시 쉬겠다며 탁자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학교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런 걸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시험에 나올 텐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지?'
그런 것처럼
'이렇게 멋진 곳에 와서 어쩜 엎드려 있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소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식판을 다 정리하고 나니 아이는 엎드린 채 잠이 들어있었다. 그때부터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날씨는 무더웠고, 더위를 먹거나 열사병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나 싶어 얼른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아이를 깨워 '워터월드'를 보러 갈 건지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표정에서 유추해 봤을 때 당장 호텔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곤한 걸 알기에 더 이상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 공연을 놓치는 건 너무 아쉬웠다.
"엄마도 사실 좀 피곤해. 그런데 이거 보려고 일부러 일정에 넣었거든. 너도 보고 나면 후회 안 할 거야. 만약 재미없으면 그때 바로 호텔로 가자, 응?"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바로 호텔로 갈 거지?"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약속!"
그렇게 우리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여전히 지쳐 보였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다양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장면들에 눈을 반짝이며 무대에 집중했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물을 가르며 펼쳐지는 장면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후,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밌었어."
짧지만 확실한 한마디였다.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공연을 본 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순간이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의 한마디가 내겐 그날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다행히도, 아이가 잠들기 전 쓴 일기에는 이날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곱하기 99를 할 만큼 더운 날씨에도 참고 따라와 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중간에 지치고 힘들어했지만, 결국 이 하루가 아이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뭉클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여행의 교훈을 얻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