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해금

by 양경은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나라 음률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김수철의 '별리'라는 노래를 자주 들었다. 지금 들어도 애절하고 처량하기 그지없다.

대학시절 유일하게 활동한 동아리가 풍물패였다. 풍물패는 쇠, 장구, 소고 등 우리나라 전통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 패거리다. 고민 끝에 장구를 선택했다. 장구는 내면에 잠재된 흥을 끄집어내기에 제격이었다. 혼자서 장구를 메고 매일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연주에 능수능란하지 않았지만 전통음악 리듬에 내 몸을 맡기는 게 좋았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에서 절로 어깨춤과 강약의 느낌이 나왔다. 대학 2학년 때까지 풍물은 내 학창 시절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장구는 내 삶과 멀어졌다.



2013년 교회에서 해금 연주를 들었다. '사명'이라는 찬송가였다. 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했다. 해금 두 줄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는 나에게 커다란 울림이었다. 해금은 빛줄기였고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마침 집 근처에 국악원이 있었다. 바로 등록을 해서 일대일 레슨을 받았다. 주 1회 레슨을 받으며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1년 정도 레슨을 받았지만 생각만큼 좋은 연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작할 때는 금방 연주를 할 줄 알았다. 해금은 처음에 소리를 내는 것부터 힘든 악기다. 현을 미세하게 누르면서 음을 잡아야 하는 악기다. 조금씩 잘못 눌러도 정확한 음을 내기 힘들었다. 힘들게 현을 누르다 보니 손가락 껍질도 까지고 피도 난다. 시간이 지나 굳은살이 생기면 연습하기도 편해진다. 손가락에 마디에 굳은살이 생길 때의 쾌감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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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부담해야 하는 레슨비는 전업주부에게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일 년 정도 배우다가 그만두었다. 실력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혼자서 레슨만 받다 보니 배움의 열정도 식었다.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해금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연습용으로 저렴한 것으로 샀지만 괜히 헛된 돈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2년 뒤 우연찮게 잠자고 있던 해금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찾아왔다. 2015년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코디로 근무를 했다. 마침 학부모 해금 동아리가 있었다. 용기를 내서 동아리에 문을 두드렸다. 학부모가 아닌데도 같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악기를 잡아서 처음에는 많이 버벅댔다. 매주 함께 연습을 하면서 연주가 즐거웠다. 초등학교 로비 음악회, 복지회관이나 교육청 행사 오프닝 공연 등을 했다. 소규모 공연을 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


대학시절 장구로 동아리 연주할 때 장단을 맞추니 흥이 한결 높아졌다. 2017년부터는 동아리 리더가 되었다. 리더가 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시스템을 갖추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점차 팀원들은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열심히 동아리를 위해 일하는 나를 좋아했다. 그러던 중 그전 리더에게 말했던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동아리의 미래를 제안했던 것인데 듣는 사람은 다른 뜻으로 해석했다. 팀원 간에 불화가 발생했다. 메인으로 활동했던 팀원 몇 명은 예전 리더와 함께 탈퇴를 했다. 나는 도망치고만 싶었다.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큰 갈등 없이 편안하게 살아왔다. 사람과 부딪히고 갈등이 일어날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퇴직 후 사람 관계로 이렇게 깊은 고민에 빠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 인생 나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팀에 남아서 나머지 팀원을 챙겨야 할까? 편하게 도망쳐버릴까? 몇몇 팀원은 나를 붙잡고 위로해주면서 떠나지 말라고 했다. 나를 붙잡아준 팀원들에게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결정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었다. 바로 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중년쯤 되어 이 일을 솔직하게 얘기할 때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도망쳐 버리면 아이들에게 창피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남은 팀원들을 챙기기로 했다.


지금도 리더로 열심히 팀원들과 즐겁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1회씩 만나서 연습도 하고 매년 10회 이상의 연주를 하고 있다


해금을 배우려는 도전과 경험이 없었다면 어떤 시련도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이런 일을 겪어보니 내가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줄이 생겼다.
사람 관계에 더욱 신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려고 더 신경 쓴다.
해금을 배우고 동아리 대표를 하면서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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