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의 대충 벌레

생각을 담는 글쓰기 4일 차

by 양경은


2주 전에 헤어숍에 가서 긴 머리를 자르고 펌을 했다. 7개월 만에 머리를 다시 했다. 내 머리는 숱도 많고 까맣다. 중년이 되면서 지인들은 머리숱이 많은 걸 부러워한다. 염색도 하지 않는다. 가르마는 몇십 년 동안 왼쪽을 유지하고 있다. 하도 오랜 기간 가르마가 고정되어 있어서 가르마 부분에는 머리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두피가 드러나서 보기가 안 좋을 때가 있다. 또한 가르마 자리는 머리가 눌려서 드라이로 봉긋하게 올리지 않으면 촌스러워 보인다.



머리 펌을 할 때마다 미용사에게 가르마를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미용사는 매직 파마를 할 때 매직기를 오른쪽 가르마 방향으로 해서 머리를 펴준다. 두상 상단은 매직 기계로 곧게 펴고 하단은 롤로 말아서 볼륨감 있는 머리가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려면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처음 머리를 하고 헤어숍을 나설 때는 우아한 스타일로 머리를 휘날리며 기분 좋게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하루가 지나서 머리를 다시 감고 드라이를 하고 오른쪽 가르마로 머리를 빗어본다. 어색하다. 뒤로 빗어서 넘겨보지만 자꾸만 앞으로 다시 넘어온다. 한 두어 번 더 해보고 나는 포기한다. 또다시 왼쪽 가르마로 쭉 지낸다.



이렇듯 오랜 기간 묵혀둔 스타일은 하루아침에 변하기 힘들다. 새로운 스타일이 자리를 잡기까지 나도 어색하고 보는 사람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계속 손대고 신경 써줘야 바뀔 수 있다.


정회일 작가의 '읽어야 산다'를 읽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아토피 피부로 인해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다. 시간이 흘러 스테로이드제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고 내성이 생겨서 좀 더 강한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접어든다. 어느 날 작가는 스테로이드제의 해로운 점을 깨닫고 약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단칼에 약 복용을 중단했다. 이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하루 30분도 푹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4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 자연치유로 몸이 회복되었다. 이렇게 단칼에 무엇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에 따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나도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다. 대충대충 버릇이다. 연예인 유노윤호가 인기 예능인 '아는 형님'에 예전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




그는 매사에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낸다고 한다. TV 예능에 나와서 하루 삶을 보여주는데 감히 나는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힘들게 살고 있었다. 나는 어떤가? 내가 하는 행동이나 결과물은 완벽이라는 단어 하고 멀다. 무엇을 하든 납기만 지키는 정도이다. 대충 해서라도. 납기에 맞추는 정도에 만족한다.


청소는 대충 한다. 구석구석 먼지를 닦으며 살지도 않는다. 청소기를 한번 쓱 돌리면 청소 끝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아토피가 있다거나 예민한 피부가 아닌 거다. 좀 지저분한 집안에 살아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 것에 감사한다. 집안 정리도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쑤셔 넣으면 정리 끝이다. 옷장에 가지런히 옷가지들을 쌓아 놓지도 않는다. 옷을 개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옷장 서랍을 열면 삐뚤빼뚤 옷이 놓여 있다. 보기에 좋지는 않지만 필요한 옷은 바로 찾아 입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고지서는 총금액만 확인하고 세부내역은 훑어보지도 않는다. 한번 내역을 살펴봐도 머릿속에 숫자가 잘 들어오질 않는다. 가끔 남편이 고지서를 보면서 이번 달은 무슨 요금이 많이 나왔네 왜 그러지? 하면서 물어본다. 그럼 나는 그래? 하고 시큰둥하게 답하고 만다.



대충 하는 버릇을 나열하려면 이루 말할 수 없다. 대충 영어공부를 하니 오랫동안 공부해도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 조금씩밖에 실력이 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많지만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과물의 수준이 남들이 보기에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런 모습에서 탈피해보려고 몇 번 애를 써보았지만 금세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간다. 그냥 이 정도에서 멈추자. 이만하면 됐다.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라는 변명을 하며 대충 끝낸다. 난 아마 대충이라는 해로운 벌레를 오래 품고 살 것 같다. 뭐 어떤가 이렇게 살았어도 괜찮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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