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짐의 무게에 감사합니다

by 양경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에 해야 할 일들로 시간이 부족했다. 일상적으로 매일 해야 하는 게 6-7가지 정도가 있었다. 많을 때는 10가지 정도 매일같이 할 일들이 있다. 책 읽기, 악기 연습, 영어 공부하기, 영상 찍기, 블로그 쓰기, 영어책 읽기, 운동하기, 글쓰기 등등 매일매일 다른 일들이 섞이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자질 못하는 때도 많았다.

남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그리 몰두하느냐고. 매일 잠이 들기 전에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되뇌면 잠에 곯아떨어진다. 반드시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성과를 낸다고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쉬고 싶은 적도 많다. 아무 생각 없이 늘어지듯 쉬면서 뒹글 뒹글 보내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집안을 후다닥 해놓고 내가 하고 일을 시작한다.



몸이 힘든 적도 가끔은 있다. 너무 힘들면 낮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한다. 잘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생겨서 또다시 기존의 루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난 왜 이리 바쁘게 살아갈까? '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려고 하지?'


누구도 나에게 시킨 사람은 없다. 남편이 벌어다 준 생활비로 아이들 학원 보내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남들 가는 여행도 가끔 가면 즐거운 추억도 많았다. 굳이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삶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벗고 싶었다. 이 욕구가 날 늘 긴장시켰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건지 깨닫기는 힘들었다. 점수로 매기지도 못하고 수익을 달성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허탈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오랫동안 빠져있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리부팅이 되었다.


중년이 되면서 주위에서는 편하게 살고 싶다라거나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즐겁게 사는 게 좋다고들 한다. 각자 삶의 가지관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스트레스받으며 사는 시간들은 내가 선택한 삶이다. 스트레스는 날 성장시켰다. 나에게 행복이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나를 변화시키길 원했다. 지금의 내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싶은 거였다. 내가 가진 능력이 많은데 그걸 끄집어내지 않고 사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란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잘 가꿔주고 사랑해주면 더 잘 자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날 위해줄 사람은 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다.


바쁘게 지내는 하루 삶도 하루하루 느끼는 무거운 짐이 되듯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책임을 지는 행동들도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 될 때가 있었다. 물론 현재 진행형 짐으로 느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 짐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맡고 있는 음악동아리 회장일은 처음에 별일이 아닐 거라 여겼다. 그래서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든인지라 사람 간의 갈등을 조율하기란 나에게 버거웠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수도 없었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짐처럼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보였다. 점차 애정을 갖게 된 팀원들을 생각하면 그리 할 수 없었다. 혹자는 뭐가 그리 힘들었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회사생활에서 직장상사에게 갈굼을 당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당사자는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 때 포기했다면 나는 사람들도 잃고 자신감도 잃었을 것이다. 고비고비를 넘기다 보니 견뎌내는 근육도 생겼다. 더욱 관계가 단단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짊어지는 역할론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 난 엄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면 세상만사 니나노 편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미없었을 것 같다. 결혼과 육아라는 짐은 희로애락이 모두 묻어나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훌륭한 엄마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결코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 나름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지켜내고 있다. 별다를 건 없다. 남들 다하는 대로 때 되면 학원에 애들 맡기고 삼시세끼 챙겨주는 게 일상이다.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면 내가 그동안 지내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공부하고 도전하고 실패해보는 경험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행복하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어른들의 꼰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경험에서 나오다 보니 아이들에게 말할 때 자신감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지금 내 어깨 위에 얹어진 짐의 무게가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했다는데 자부심이 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나서 만끽하는 휴식시간은 감사하다. 글 한편을 쓰고 책 한 권을 읽고 영어문장을 외우면서 바삐 하루를 보내고 나서 침대 속에 몸을 누이면 5분도 되지 않고 바로 잠이 든다. 집중이 안될 때 보는 넷플렉스 영화 한 편을 소중하게 느낄 때가 많다. 점심을 집에서 딸내미와 먹을 때 식탁에 태블릿을 놓고 지나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식탁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내 책상으로 몸을 옮길 때면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누군가는 너무 과장하는 거 아냐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실인 거다.


내가 선택한 나의 짐으로 인해 오늘 하루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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