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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Jun 02. 2021

내 딸들의 결혼생활을 꿈꾸며 엄마가 보내는 편지


피천득 님의 [인연]을 읽으면 작가님 딸 서영이에 대한 글이 나온다. 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말과 딸이 참 잘 컸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내 아이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자못 궁금하다. 

내가 잘 키우고 있는 건지,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 결혼생활도 이제 20년이 넘었다. 남편과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며 내 딸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 StockSnap, 출처 Pixabay





얘들아 너희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 너희 세대들은 독신으로 즐겁게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

내 딸들이 만약 남편감을 고르게 된다면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당연히 처음에 서로 떨어지기 싫어서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겠지? 그런 감정은 결혼 후 몇 달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 그게 결코 사랑이 식어버려서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사랑 혹은 감정을 둘이서 만들어 가라는 뜻이야. 세상에 사랑의 종류는 워낙 다양하니깐? 둘이 싸울 일이 많을 거야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화내는 기간이 길지 않으면 좋겠다. 며칠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의 시간을 갖겠지. 그럴 때 서로의 감정을 잘 다스리기 바란다. 일어난 상황에 대해 상대방 입장에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도 둘만의 시간을 가지길 바라. 아이들이 잠든 이후에 맥주 한 잔이나 차 한잔하면서 아무 수다라도 떨어봐. 서로 얼굴을 찬찬히 바라볼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점점 결혼생활이 지나면 마주 보기보다는 한 방향을 향해 둘이 걸어갈 일이 많단다.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일이 점차 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크면 둘이서 아침 산책을 자주 다니렴. 모닝커피를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서로 원하는 일상을 존중해 줘. 각자 시간을 즐겨야 서로 만났을 때 즐거울 거야. 늘 모든 걸 함께 하긴 힘들다. 각자 이기적 삶을 인정해 줘. 본인을 챙기고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길게 행복할 수 있다.

결혼생활이 결국 가족을 이루며 사는 건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공존해야 가족의 삶도 길게 갈 수 있다.



각자 취미생활을 즐기면 좋겠다.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도 있으면 좋겠고. 운동을 즐기기는 힘들지만 서로가 루틴으로 가져갈 운동은 무엇이든 하길 바란다. 늙으면 몸이 점차 약해지니 오랫동안 운동을 하면 체력을 유지하길 바란다.



© kalljet, 출처 Unsplash





노년의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길 바란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국 둘만의 시간이 아주 많을 거야. 그 기긴 동안 뭘 하며 지낼지 가끔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을 알아야 나중에 조율하면 살 수 있어. 노년이 되어 이렇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상대가 갑자기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단다.


 


 이런 대화를 하려면 평소에 대화 시간이 많아야 해 바쁘게 사느라 대화가 부족하면 나중에 노년에 갑자기 서로만의 시간에 진지한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서로가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해. 부부관계가 큰 문제가 없으면 결국 배우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마련이다. 그러려면 평소에 잘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일단 끝까지 경청해 줘. 허접한 이야기라도 배우자가 가장 잘 듣고 리액션을 잘해주면 나중에 무슨 이야기든 편하게 할 거야.



둘만의 추억을 결혼 이후에도 계속 쌓아야 한다. 특정 물건,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둘이서 행한 결과물에 대해 언제든 얘깃거리가 풍부하게 살아라. 둘이서 자주 가는 길가, 쇼핑장소, 카페, 아침 시간, 소소한 선물 등이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거야. 두 사람이 만나서 사는 게 별일 아니듯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서로 상처 주는 일도 많을 텐데 상처를 메꾸게 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아야 오래 살 수 있단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실망할 경우나 힘든 상황이 많을 거야.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엄마는 인내였다. 하지만 너희들에겐 뭐가 필요할까. 당연히 지혜가 으뜸이다. 인내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너희들 삶은 우리와는 다르게 펼쳐질 테니깐. 대화로 모든 걸 풀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더라.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모든 걸 감내해야 할 경우도 많으니깐. 그렇다고 인생 손해 보는 건 아니야.



사람 보는 눈 좋다.라는 말이 있지.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는 적용이 되질 않는다. 평생 옆 지기를 만나는 건데 단박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알아보기란 어렵다. 그저 내가 본 것은 상대의 100분 1만 본 거나 다름없다. 결혼에서 살다 보면 내가 확신했던 100분 1이었던 장점조차 사라지기도 한다. 나머지 측면을 네가 감당할 수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있겠지. 그러니 결혼은 이제 다시 시작이나 다름없다. 결혼 전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감정을 쌓으면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 노력이 항상 필요한 거고. 네가 선택한 그 배우가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너 또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투자라는 말이 냉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로에게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면서 내 인생을 다시 만드는 게 결혼이야. 두 사람의 노력으로 전적으로 다른 삶이 펼쳐질 거야. 둘만의 시너지 효과가 높아지면 생각지 못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어. 부디 내 딸들이 긍정적 시너지를 발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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