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경은 Jun 18. 2021

내가 선택한 지금 이 순간 푹 빠져 보자


2021.06.18. 금요일. 비가 내리고 있다.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간 오늘.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 뭐 하지?'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느긋하게 아이들이 먹다 남긴 유부초밥을 3-4개 먹고 설거지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대개는 외출할 일이 있을 때 가지고 나가는 편인데 오늘따라 바로 버리고 싶었다.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들고 재활용 쓰레기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갔다 왔다. 잠시 쉴까 싶었는데 청소기를 붙잡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는데 어제 청소를 하지 않아서 아침에 후다닥 해치웠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해금 연습을 먼저 해볼까? 헬스장에 갔다가 동네에서 차 한잔할까? 비가 오니 바로 나가기가 싫다.


청소를 하는 동안 틀어놓은 CBS 라디오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좋은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마냥 음악에 빠지고 싶었다. 얼른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타가지고 책상에 앉았다. 음악에 어울리는 책을 보고 싶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하루에 조금씩 보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 보면 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커피와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마트폰을 들고 책상에 앉는 순간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엔리오모리꼬네가 작곡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영화 삽입곡인 <DEBORAH'S THEME>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감독세르지오 레오네출연로버트 드 니로개봉Invalid date / 2015. 04. 09. 재개봉







이 영화를 예전에 본 기억은 있다. 아마 언니들 따라서 10대 후반에 본 듯하다. 영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발레 연습하는 여주인공을 몰래 훔쳐보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옛날에 보았고 내 감성으로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질 못했다. 이런 좋은 음악이 삽입되었던 것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음악을 반복해서 다시 듣고 있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이 나오진 않지만 슬픈 일이 없어도 이 감정에 빠지고 싶다. 순간에 푹 빠져서 음악의 흐름에 따라 내 글을 쓰고 싶다. 억지로 지어낸 글이 아닌 진짜 내 가슴에 느껴지는 스토리를 담고 싶다.


새벽녘 아직 날이 환히 밝아오지 않은 시간에 혼자 호수 옆을 산책하는 듯하다. 무심코 호수를 바라보는데 작은 배 안에 사람 한 명이 타고 있다. 목적지 없이 배를 타고 아침 산책을 하나보다. 나는 걷는 속도로 그 사람은 노 젖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둘 다 무념무상의 상태이다. 사실은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 차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 잊은 듯하다. 그냥 그 길이 좋아서, 그 시간이 좋아서 거기 있는 게 행복할 뿐이다. 산책 시간이 끝나면 다시 집이든 가족이든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정신없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을 더 즐기고 싶고 행복감이 든다. 상대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이 있기에 이 순간이 감사하다. 잡생각을 다 버리고 그냥 멍하니 걷기만 하자. 멍 때리는 순간을 즐기듯 푹 빠져보자.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행복은 삶이 끝나갈 때쯤에나 찾게 될 겁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들의 합이 될 테니까요.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믿으세요.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겁니다.

                                                     [여덟 단어] <현재> 박웅현







난 매 순간을 성실히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 학교 수업시간표처럼 꽉 차여진 스케줄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태해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를 하는 순간에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책을 읽을 때도 저 책도 읽어야 하는데 어쩌지?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계속 채찍질만 한다. 무엇 하나 즐기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 자신을 한탄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시작하고 포기도 많이 했다. 뭔가 깊이 있게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푹 빠져 살아보질 않았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성과에 급급해서 결과에 집착했다.



'현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나에게 뭐라고 한마디 할 듯하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서 하나하나 쌓아나가지만 마음은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나였다. 지금 이 순간 말로만 의미를 부여해서 뭔가 행동을 취하고 있지만 온전히 마음을 다해보자.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모두 버리자. 순간에 이뤄낸 내 모습만 즐기자. 하루하루가 급할 것 없다. 무엇이든 급하게 맘먹고온전히마음을 다하지 못하면 오히려 내공이 쌓이질 않는다. 집중하는 이것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것임을 마음에 새겨보자 오늘 못하면 내일이 있는 거다.







단, 내가 선택한 그 무엇이든 마음을 다하여 이 순간 푹 빠져서 즐겨보자.
다른 무언가는 담에 빠져도 된다.  -양경은-











작가의 이전글 내 딸들의 결혼생활을 꿈꾸며 엄마가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