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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Jul 15. 2021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


어제는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갔다. 둘째 녀석이 함께 자고 싶다고 했다. 아침에 내가 먼저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런데 아이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질 않았다. 중년이 되면서 노안이 왔기 때문이다. 조금 고개를 뒤로 해서 보니 아이의 눈썹 가닥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얼굴도 만져보고 몸도 쓸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예쁘다는 말도 여러 번 해주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보이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 거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다 포함한다. 난 노안으로 눈이 안 좋아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잘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잘 보이질 않는다. 자식을 곁에 가까이 끼고 본다고 자세히 알 수 없다. 부모 앞에서 하는 행동과 말투 말고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건 다른 색깔일 거다.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 아이들의 다른 면들을 볼 수 있다. 그저 부모한테는 칭얼대고 징징대기만 하는 아이들이지만 내가 모르는 면이 많을 거다. 아이들의 면면을 세세히 알기는 힘들다.



부모는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동의 단점을 지적한다. 저런 단점을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할 때 나올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맘은 절대 이해 못할 거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부모니깐 부모밖에 없으니깐 이런저런 장단점을 다 보여주는 거겠지. 가장 편하고 만만한 엄마, 아빠한테 보여주는 게 낫겠지. 다른 모임이나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받았던 스트레스 부모에게 풀어내버리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말로 날 위로한다.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서 보이는 행동을 보면 고마울 때도 많지만 속상한 상황도 여러 번 있다. 그런데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있으니 그런 거다. 그리고 참을만한 상황이니깐 그렇기도 하다. 예전에 남편 출장지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우연히 거래처 담당 부장님과 식사를 하였다. 식사 동안 남편의 모습을 보고 새삼 놀랐다. 예의 바르게 상대를 대우했다. 조금의 긴장도 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긴장감이 드러나서 경직되어 보이진 않았다. 그저 상대를 높인다는 느낌이 들뿐이었다. 그리고 식사 동안 남편은 거의 식사를 하질 않았다. 평소에 농담과 진담을 적절히 섞어서 좌중을 집중시키는 남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거래처 상대방에 대한 존중감이 잘 드러나게 행동했다. 가끔 출장 가면 늘 맛난 거 먹으면서 가족들 생각난다고 했는데 실상 남편은 잘 먹지는 않은 거다. 음식은 대접하는 거고 분위기를 띄우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었다. 우연히 따라간 출장지에서 남편의 식사자리 행동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가족들과 있을 때 행동만 보면 남편의 다른 면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일터에 매번 따라가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알지 못하는 면들이 많을 거다. 좀 더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상상해봐야 한다. 일단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큰 장벽이 있기는 하지만.



가족을 가장 믿어야 하지만 사실 가족을 가장 믿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진짜로 가족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힘이 저 밑바닥에서 조금씩 솟아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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