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장에 취직하셨다

by 양경은

아침 일찍 고모들이 집에 찾아왔다. 다짜고짜 윗도리를 갈아입으라고 했다 내가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으니 고모가 직접 벗겼다 내 상의는 흰 바탕에 빨간색 하트가 크게 인쇄된 것이었다. 좋아하는 티셔츠 중 하나였다. 어릴 적에는 잠옷과 외출복이 구분 이 없었다. 학교 갈 때도 입고 잘 때도 입었다.


어리둥절 했다. 가만히 고모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으라 말했다. 이유도 모른 채 서랍에서 검은 옷을 아무거나 주섬주섬 입었다.


아빠 돌아가셨어

중학교 1학년때이다.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워낙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빠는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는 버스 운전기사였다. 밤늦게 일이 끝나서 숙직실에서 주무셨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거다.


어려운 살림에 겨우 장례를 치렀다. 그때는 장례식장이 흔치 않았다. 집에서 장례를 치러서 며칠 동안 손님들이 북적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안이 고요해졌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나는 학교에 갔다. 며칠 후 갑자기 엄마가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오빠가 집에만 있으면 두통이 너무 심해서 집을 빨리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그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오빠가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환경을 바꾸어줄 필요가 있었다. 가계를 책임지던 아빠가 안 계시니 우리 집 형편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급하게 집을 얻어 이사 갔다.


엄마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남편을 잃었다. 과부가 된 거다. 나는 마흔아홉이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오빠는 취업준비생, 큰언니는 사회초년생, 작은언니는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과부라는 단어는 왜 이리 거부감이 들까? 뭔가 갖춰지지 못한 느낌.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당당할 수 없는 말, 과부!


아빠가 떠나시고
엄마는 얼마 후 공장에 취직하셨다.




엄마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여자가 나가서 돈 버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다 가끔 집에서 수입품 뜨개질을 해서 몇 푼의 돈을 벌었던게 다였다 난 어릴 적 엄마가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 엄마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나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딸 둘이 있다 만약에 나도 엄마처럼 혼자가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들어가야 할 생활비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마흔 중반이 되고 보니 엄마의 그때를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중학생인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없다 엄마니깐 엄마니깐 어떻게든 하겠지 나는 막연히 내 학비 정도는 엄마가 해결해 줄거라 믿었다 나는 철없는 막내였다


한 번도 일을 안 해본 엄마가 직장생활이 어떤지 궁금했다


“엄마 공장 일 힘들지 않아?”

“힘들지만 재밌어! 돈도 벌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


엄마는 일을 하고 싶었단다 밖에 나가 활동하며 돈도 벌고 싶어 했었던 거다 일이 힘들지만 본인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으셨던 거다 일찍부터 아빠가 엄마도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갔다 엄마는 좋아서 공장의 동료분들께 한턱냈다고 하셨다


“엄마 뭐 사줬어?”

“자두맛 캔디 한 개씩 돌렸지”

“겨우 사탕 한 봉 지야?”

“그거면 됐지!!!”


더 근사한 것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사주진 못했지만 엄마는 행복해하셨다 당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생색을 내신 거다 소박한 선물로 자식 자랑을 하는 게 얼마나 좋으셨을까? 그런 엄마가 귀여웠다



엄마는 일 하느라 바빴지만 항상 집안을 깔끔히 정리하셨다 하루에 두 번씩 방바닥 걸레질을 하셨다 매끼 새로운 반찬 한 가지는 만들어 내놓으셨다

지금 나는 진공청소기도 있고 편하게 외식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엄마만큼 깨끗이 치우지도 못한다 식사 때마다 반찬을 만들지도 않는다


엄마는 늘 유쾌하셨다 농담도 잘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힘든 내색을 잘하지 않으셨던 엄마다 아빠 때문에 힘든 시간도 많이 보냈지만 자식들 앞에서 아빠 흉도 보질 않았다


엄마는 묵묵히 가족을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여겼다.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 라는 말이 늘 힘든 걸 견딜 수 있는건 아니다. 희생은 누구에게도 당연히 받아들여야할 것이 아니다.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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