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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Apr 23. 2021

“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닷마을 다이어리>

삼키지 못한 울음들이 쌓여 어쩌지 못하는 돌덩이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을 치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어도 미처 토해내지 못한 돌덩이 때문에 말문이 먼저 막혀버리는 사람.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최근 또 한 번 말문이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세상사람 전부가 다 나를 오해해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던 단 한사람. 그 사람이 가장 크게 나를 몰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일이 이토록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 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주던 하나의 세계와 결별하는 일은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혼돈을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폐허가 된 마음을 추스르며 이따금 바스락 거리는 슬픔으로 울컥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며 많이 울었다. 소라껍질을 귀에 대고 눈을 감으면 은은한 바다소리로 추억에 잠기 듯 마음의 백사장 위로 낙서처럼 새겨진 따스함을 불러내던 영화였다.


자그마한 바닷마을 카마쿠라의 ‘낡은 이층집’에 살고 있던 세 자매는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스즈’라는 15살 난 이복동생을 만나게 된다. 세 자매의 큰언니 ‘사치’는 일찍 친모를 여의고 어른들이 할 일을 도맡아 하던 이복동생이 마음에 쓰여 스즈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스즈를 가족으로 맞이하며 ‘네 자매’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가족.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주저앉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 자체가 송곳 같은 아픔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세 자매의 상처는 아버지가 불륜으로 15년 전 집을 떠났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세 자매 모두 나름의 결핍과 상처가 있지만 속 깊은 큰언니, 발랄한 둘째 언니, 해맑은 셋째 언니는 어린 스즈를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따스한 온도로 대해준다. 아직 사춘기 소녀이지만 일찍 애어른이 되어 언니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던 ‘스즈’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언니들의 부모님을 헤어지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시간은 상처를 무디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그 흔적마저 없앨 수는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가 담긴 상흔을 지닌 채로 살아간다. 몸이라는 영토가 지닌 한계로 타인의 상흔을 똑같이 느낄 순 없지만 서로의 상흔을 알아봐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네 자매가 살고 있는 ‘낡은 이층집’은 서로의 보살핌 속에 역사, 상흔, 추억, 그리고 자매들의 성장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 되어간다.    

      

“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해”(영화 중)     


언니들의 따스한 손길 속에 스즈는 잃어버렸던 아이의 웃음을 되찾아 간다. 이와 동시에 언니들 또한 스즈의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와 조우하게 된다. 누군가와 포옹할 때 두 사람의 체온이 포개지며 따스함으로 공명하게 되는 울림을 영화는 잔잔한 파도소리처럼 들려준다.    

  

‘돌봄’은 생명이 지닌 원초적 속성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성장하고 ‘손길’을 통해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를 돌보고, 나아가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된다. 때때로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을 땐 여전히 타인의 손길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며 얼마 전 폐허 위에 주저앉은 내게 손 내밀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울고 있던 나에게 ‘밥먹자’하고 친구가 되어준 별꽃님. 그런 별꽃님이 석 달째 기타를 배우러 다니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기타교습소를 상상하며 따라간 곳은 옹이진 나무와 책으로 지어진 ‘작은 숲속(http://naver.me/5JJGg9Su)’이었다. 그곳의 주인장 김인식 교수님은 처음 본 내게 인심 푸근하게 손수 지은 밥을 대접해 주시고, 툭 꺼내진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는 내가 놓쳤던 부분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며칠 째 잠 못 이루어 갑옷처럼 딱딱해진 어깨를 라벤더·오렌지 오일로 정성스레 마사지 해준 윤주 언니. 나를 이토록 귀한 손길로 대해주는 사람들을 두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날의 ‘소풍’ 이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갈 온기를 얻었다. 영화의 ‘스즈’가 언니들을 만난 것처럼.   

  

“누구 탓도 아니야”(영화 중)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커다란 에피소드 없이도 평범한 일상 속에 삶과 죽음과 인간 존재의 모순이 크게 모나지 않게 좌우충돌하며, 이러한 모순이 삶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게 바로 너의 삶이라고.      


나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준 그 사람은 사실 자신의 최대한으로 나를 대했을 뿐이다. 그의 최대한이 미숙함으로 드러났을 뿐. 나 또한 나의 최대한이 언제든 누군가에게는 미숙함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인간은 언제든 실수 할 수 있는 존재니까. 언제까지나 신처럼 완벽해질 수 없으니까. 아무리 그 사람의 존재가 나에게 신처럼 커다랗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걸었던 기대도 실망도 애초에 나의 몫이었다.


우리는 작은 신들과 결별하면서 성장해 나가는지도 모른다. 작은 신이 떠나간 빈자리를 다시 사랑으로 초대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중복 게재(사적인 내용은 편집)

http://omn.kr/1sy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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