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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Jan 25. 2021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이야기<살인자의 기억법>

과연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권리가 있는가?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도스토예프스키<죄와벌>의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권리가 있는가?


17년 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수의사 김병수(설경구). 그는 얼굴에 경련이 생길 때마다 단기 기억상실에 빠진다. 그의 첫 살인동기는 아버지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극단적 폭력앞에 그 날도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병수는 구타당한다. 질식할 것만 같은 폭력 상황앞
에서 열 다섯 살 병수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살인마를 보았고, 결국 아버지를 베개로 질식시켜 죽인다. 그 후 병수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자, '짐승'을 살리는 수의사가 된다.

병수의 연쇄살인은 17년 전 기억안에 갇혀있다. 딸 은희(설현)와 단 둘이 살며 일상을 살아가는데 우연한 접촉사고로 민태주(김남길)를 만난다. 자신과 같은 눈빛을 가진 태주가 최근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범임을 직감한다.

은희의 남자친구가 된 태주와 그리고 딸을 지키고픈 아버지 병수. 연쇄살인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에겐 가정폭력이라는 또다른 분모가 있다. 어머니를 단죄하겠다며 발가벗겨 내쫓는 아버지를 가진 태주. 가엾은 어머니는 마땅히 아버지를 증오해야했음에도 태주의 머리를 다리미로 때려 심각한 외상을 남긴다.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상흔만큼이나 여성에게 지독한 증오심을 품게된 것이 태주의 살인동기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두 남자의 살인은 자의적이지만, 동시에 타의적이다. 자살이 죽이고 싶은 대상을 내면에 투사해서 스스로를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죽어야할 사람을 죽이는 것과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것일까?

영화는 태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죽어야할 사람 또한 당신이 정하는 것 아닌가? 나도 내가 정한 사람을 죽인것이다. 그러니 본질에 있어서 당신과 나는 같은 살인마일 뿐이다"라고.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는 것.
노모스nomos(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이자 그 결과는 항상 비극이다.
소설 <죄와 벌>의 라스꼴니코프는 노파를 죽인 후 극심한 죄의식과 내부분열에 시달린다. 영화속의 병수 또한 메마른 피부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경련을 통해 암흑의 터널같은 고통스러움 속에 살아왔음을 암시한다.

"70년의 인생.......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병수의 독백이다. 영화가 끝나는 내내 나는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짐승(아버지)을 죽이기 위해 짐승이 되어야 했고, 짐승의 삶을 구원해준 딸을 살리기 위해 망각과 고통속에서 싸워야했던 한 인간의 참담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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