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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Jan 20. 2021

영화 <어린 의뢰인>이 알려주는 아동학대 시사점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낳지 않은 아이는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는 거예요?

충남 천안에서 의붓엄마에 의해 여행가방에 숨진 9세 아동, 경남 창녕에서 친모의 학대에 못이겨 탈출한 9세 아동, 보호자가 집을 비운 사이 발생한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인천 미추홀구 초등학생 형제, 그리고 정인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아동학대로 여론이 뜨겁다.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낳지 않은 아이는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는 거예요?”
(영화 대사 中)
 
2019년 개봉한 <어린 의뢰인>은 실제 아동 학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임아무개씨는 자신이 행사한 폭행으로 인해 만8세인 의붓딸 A양이 복통을 호소함에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장간막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숨졌다. 이후 임씨는 A양의 언니(만12세)에게 '동생을 죽였다고 하라'며 허위 진술을 강요해 아이도 공범으로 기소되게 했다. 이 사건은 칠곡계모 아동학대 사건이란 명칭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타인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저 대형 로펌에 들어가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였던 정엽은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누나에게 등떠밀려 아동복지기관에서 일하게 된다. 어느날 심드렁하게 시간 때우기나 하던 정엽에게 새엄마가 학대를 한다며 다빈과 민준 남매가 찾아온다.


다른 어른들은 다빈의 말을 귀담아 주지 않거나 모르는 채하지만, 정엽은 업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자꾸 찾아오는 남매와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된다. 영화는 남매의 삶에 방관자로, 주변인으로, 그리고 적극적인 옹호자로 변화하는 정엽의 모습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려낸다.
 
또한 피해 아동의 목소리를 다빈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려내면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가슴 깊이 가닿게 하고 생존을 위해 가장 가까운 부모로부터 모멸감과 굴욕감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을 내 아이가 아니라고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어른들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영화가 알려주는 아동학대 문제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1. 폭력의 대물림
“몇 대 때린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엄마로서 자식을 위해서 잘못한건 가르치려고 한겁니다. 엄마가 내 새끼 잘못했는데 때리지도 못합니까?”(영화 대사 中)
 
아동학대(child abuse)란 아동을 신체적, 심리적,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의 지숙은 처음에는 남매를 살뜰히 챙기다가 젓가락질이 서툰 민준이가 계속해서 반찬을 흘리자 분노를 폭발시킨다. 아직 7살인 민준이 반찬을 흘리지 않고 먹기를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 아이의 눈높이를 헤아리지 않은 높은 기대치를 기준으로 설정해놓고 이를 아이가 지키지 못하자 지숙은 ‘날 무시하냐’면서 극단적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런 지숙의 행동은 분노조절장애와 세부사항에 대한 집착, 완고함, 경직성, 지나치게 통제적인 패턴을 지닌 강박성 성격장애의 특징을 보여준다. 자신과 타인을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드는 성격특성을 지닌 ‘성격장애’의 경우 정신분석적으로 어린 시절의 양육환경과 큰 관련성이 있다고 밝혀졌다.
 
대부분 지나치게 처벌적·비난적·폭력적인 양육 환경이었거나 보살핌 없는 무관심 속에서 정서적 방임 상태로 자라난 아이들이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마음이 찢어진 상태로 성인이 되는 것이다. 영화 말미 정엽과 지숙의 대화는 지숙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강지숙’들은 처음에는 아픈 사람이었다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척박하고 거친 환경이 기질적 취약성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부적응 상태의 성격이 형성된다. 이런 상태에서 폭력이 주는 쾌감에 중독이 되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데, 타인을 공격할 때 쾌감을 주는 도파민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극단적인 학대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일 크고 작은 학대를 일삼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아동학대 부모를 악마화 하여 처벌 수위를 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이유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
 
2. 법의 허술함
“어차피 우린 수사권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조금만 덜 때려주세요. 이제 안 때리실 거죠? 이러면서 예의바르게 방문조사나 하고...근데 경찰은 또 우리에게 보내고, 우리는 경찰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이렇게 뺑뺑이 도는 게 지금의 법이에요.”(영화 대사 中)
 
영화 속 아동복지기관 담당자의 말이다. 현실의 정인이가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의 신고가 있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정인이를 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낳지 않은 아이도 남들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빌려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웃을 만나야 할지 걱정해야 한다면 아직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아동학대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뜨거운 여론은 ‘지속적인 관심’이 되어야 하며 부모 스스로가 ‘일상적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양육해야 한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에 방관자인 어른들은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부모 잘못 만난 게 '참사慘死'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마이뉴스 중복 게재



칠곡계모사건의 실제 변호인이셨던 이명숙 변호사님은 도가니 사건 때도 변호를 맡으신 분이시네요.

여전히 정인이에게는 변호인이 없대요. 여전히 법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이죠.

이명숙 변호사 인터뷰인데
참 안타깝네요.

"
Q. 7년 전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까지 냈는데, 여전히 되풀이되는 아동 학대 비극 막으려면?
A. 영국은 클림비 사건 이후 1년 이상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무엇이 문제인지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한 뒤 아동경찰청을 만들었어요. 우리도 그런 식의 대안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뚝딱 만드는 법으론 아이들이 계속 죽어나갈 거예요.

"
"요즘 인터뷰 잘 안 해요. 언론이 아동 학대사건 때마다 찾지만 이후 대안이 제대로 마련된 건 없고.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이슈가 되니까 며칠 만에 법 통과된 것도 웃겨요. 얼마나 졸속 입법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지 알 수 있죠." (이명숙 변호사 |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868515?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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