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경험이 겸손을 알려준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거 같다. 20대 초반만 해도 내가 마음먹고 노력하면 세상이 내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줄 것이라고 착각해왔다. 그때는 나의 한계를 알고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웠던 거 같다.
미국 드라마 <Sex and the City>에 나오는 ‘캐리’처럼 살고 싶었다.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마음껏 쇼핑하고 연애를 즐기며 살고 싶었다. 대학을 빨리 졸업하고 돈을 벌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 노력한 만큼 점수를 얻을 수 있었는데, 대학 4학년 때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퇴짜 맞는 이력서가 점점 늘어갈수록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배우게 된 거 같다.
어렵게 취업을 하고 단칸방 고시원에서 살다가 월세집으로 이사를 하고 매달 집세를 내면서 생활하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캐리’처럼 명품 옷과 구두를 사다가는 신용불량자가 될 따름이었다. 서울살이의 주된 정서는 소외감과 허영, 열등감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강원도 시골에 살게 되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느린 생활은 바깥의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기던 도시의 생활과는 다른 삶을 제공해 주었다.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성찰을 더해갈수록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와 조우하게 되었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외출을 절대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와는 결별하고 민낯으로 산책을 다니고 남들이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쓰지 않고도 편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잘나 보이려 애쓰던 애쓰지 않던 ‘나’는 ‘나’인 것을 예전엔 몰랐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일지 몰라도, 세상에는 애초에 주인공 같은 게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어우러져 살아갈 뿐이라는 점을 인식할수록 겸손해지게 되는 거 같다. 내가 한계를 지닌 인간이듯 타인 또한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점점 나와 타인에게 너그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