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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Dec 06. 2017

"낡은 양말 한 쌍"같은 사랑

결혼기념일에 영화《내사랑》을 보며......

2017. 12. 05. 7년째 동거 중


《내사랑》은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원제는 《Maudie》인데, 영어 사전을 찾아보니 "여자 이름. Maud의 별칭"으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남편 에버릿만이 모드를 '모디'로 불러준다.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선천적 장애를 지닌 모드. 길을 걸어 갈 때면 동네 꼬마들에게 돌을 맞을 정도로 지금 보다 훨씬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와 멸시가 심했던 시대에 그녀는 가족에게조차 소외당하며 집안에서 창밖의 세상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모드를 대하던 세상의 태도는 쌀쌀맞기만 한데도 그녀의 내면이 바라보던 세상은 따스하고 살갑기만 하다. "액자 안에 나의 삶이 다 들어있어요"라고 했던 그녀의 세상에서는 사람과 일상의 자연물들이 어우러져 소박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존 화가 모드 루이스와 작품들


어느 날, 고아원 출신으로 낡고 작은 집에 홀로 살면서 생선을 팔고 소일거리를 하며 고독하게 지내던 에버렛은 가정부를 구한다는 전단을 붙인다. 가족에게 조차 낡은 짐짝 취급을 받던 모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에버렛을 찾아간다. 다리를 절고 장애로 쪼그라든 몸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드를 멸시하던 에버렛. 외따로운 곳의 폐허처럼 낡고 무채색이던 그의 공간은 그녀의 민트색 물감을 시작으로 생기를 얻으며 그렇게 두 사람은 서서히 물들어 간다.


자신의 물리적 공간을 내어 준 그와, 마음의 공간을 내어준 그녀의 동거는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고, 고아원에서 치러진 둘만의 소박한 결혼식 날, 서로의 손과 발을 포개며 "낡은 양말 한 쌍"이 된다. 남들에겐 보잘 것 없어보이는 한 쌍이지만, 몸의 장애를 안고 있던 그녀와, 마음의 장애를 안고 있던 그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해진다.


닉슨 대통령이 그림을 사면서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조용한 부부의 삶은 세간의 관심으로 침해받으며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위기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더욱 확인 하는 계기가 된다.


관절염의 악화와 폐질환으로 생명이 꺼져가던 모드는 "나는 당신에게 사랑 받았어요"하며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그녀의 마지막을 보며, 육신의 장애는 우리의 영혼에 아무런 질곡이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사랑이자, 누군가의 따스한 눈길이라는 것을 그녀의 삶이, 작품이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실존 모드 루이스

12월 5일은 나와 남편이 부부의 연을 맺은 날로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하는 주이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들어온 남편과 집앞의 분식집에 갔다. 드라마에 나오는 로맨틱의 표본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마시는 것과는 달리, 우리 부부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날을 기념했다. 소주 한 병과 김밥 세 줄, 그리고 오뎅탕과 함께.


"당신과 나, 참 지지고 볶고 할퀴고 상처주고 많이도 싸웠지."

"자기 중심적인 두 사람이 만났는데, 맞춰가려면 싸우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연애 때보다, 당신을 많이 이해하게 된 지금이 더 좋아. 앞으로도 더 많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


새 양말이던 한 쌍은 7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보풀도 생기고 구멍이 난 건 꿰매기도 하며 "낡은 양말 한 쌍"이 되었지만, 모드와 에버릿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에게 충분한 존재로 거듭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내사랑》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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