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 끝에서 만난 ‘나’라는 바다
1. 목마름의 끝: '영화'라는 섬이 가라앉을 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바닥이 꺼져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스무 살부터 영화만 바라보고 달려온 40대 프로듀서 찬실에게 ‘영화’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언어였고, 정체성이었고,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다. 그런 찬실에게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을 잃는 경험이다. 마치 오랫동안 정박해 있던 배가 밧줄이 끊어진 채 넓은 바다로 표류하는 느낌.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저는 늘 목말랐던 거 같아요 (…)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젊은 시절, 찬실은 늘 목말랐다. 인정받고 싶어서, 성공해야만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나를 채워줄 무언가를 미친 듯이 붙잡고 살던 갈증. 채워도 채워도 해소되지 않던 목마름. 그러나 그 목마름은 사실 찬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이 가진 마음이다.
융은 인간의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흔들리는 ‘넓은 바다’에 비유했다. 찬실이 전부라고 믿었던 영화라는 작은 ‘섬’이 가라앉자, 그 아래 잠겨 있던 무의식의 바다—진짜 마음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녀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찬실은 모르게 시작된다. ‘진짜 나(Self)’로 돌아가는 개성화(Individuation)의 여정이.
2. 내면의 거울을 만나다
새로운 월세방에서 시작된 찬실의 일상은 뜻밖의 ‘내면의 조각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외부 인물이지만, 사실은 찬실의 내면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첫 번째 만남, 할머니: 따뜻한 어머니 원형(The Great Mother Archetype)
옆방의 할머니는 찬실의 세계에는 없던 속도로 산다. 매일 분주하게 몰아치던 영화판과 달리, 할머니는 그저 밥을 지어주고, 별말 없이 곁을 내어준다. 융 심리학에서 ‘어머니 원형(The Great Mother)’은 치유와 돌봄, 회복의 에너지다. 할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쉬어도 괜찮다.”
찬실이 처음으로 멈춰 서는 순간이 이 온기 속에서 찾아온다.
두 번째 만남, 장국영 귀신: 숨겨둔 그림자(Shadow)
이어 찬실 앞에 불쑥 나타난 장국영 귀신은 가장 흥미로운 상징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던 찬실이 평생 뒤로 밀어둔 불안, 슬픔, 무력함, 그리고 '실패자'라는 두려움의 감정들이다.
융은 우리가 평소 숨기고 싶어 하는 감정과 두려움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장국영 귀신은 찬실이 그동안 애써 밀어둔 그림자의 얼굴이다. 장국영은 찬실을 따라다니며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고, 찬실의 속을 들여다보는 말을 던진다.
“너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뭐야? 네 진짜 마음은 어디에 있니?”
찬실은 그와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어둠과 취약함을 인정한다. 그림자를 인정하는 일. 그것은 성장을 위한 필수 관문이다.
세 번째 만남, 불어 선생 영: 아니무스(Animus)의 깨어남
찬실의 마음을 다시 깨우는 또 하나의 존재는 불어 선생 영이다. 영의 맑은 눈빛과 진심 어린 말투는 그녀에게 오랜만의 설렘을 일으킨다. 융은 여성의 내면에 방향성과 창조성을 깨우는 에너지, ‘아니무스(Animus)’가 있다고 보았다. 영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찬실의 닫혀 있던 감각을 열어주는 문과도 같다.
설렌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건드린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 때문이라는 사실.
그의 맑은 에너지는 찬실의 굳어 있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영은 찬실을 다시 살아 있게 하는 감각을 일깨운다. 그것은 더 이상 ‘성공해야 한다’는 목마름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다’는 부드러운 충동이다.
3. 소피 — 과거의 나와 마지막으로 마주하기
여기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있다. 찬실이 오랫동안 함께 일한 배우 친구 소피. 소피는 찬실이 속해 있던 영화계의 속도, 욕망, 불안, ‘잘 살아 보이는 삶’을 그대로 지닌 존재다. 융의 언어로 말하면, 소피는 찬실의 페르소나(Persona)—‘사회가 원하는 나’의 얼굴이다.
소피의 불안과 조급함을 바라보며 찬실은 조용히 깨닫는다.
“아, 나는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과거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소피는 찬실이 ‘옛 세계’를 놓아주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4. 목마름의 끝에서—‘사는 게 뭔지 궁금해진’ 찬실
모든 만남과 충돌을 통과한 뒤, 찬실은 다시 영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다. 더 이상 영화가 그녀의 ‘전부’가 아니라, 삶이라는 더 큰 바다 속에서 '한 조각'으로 자리 잡는다.
찬실은 말한다.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 않더라구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이 고백은 찬실의 여정이 끝내 도달한 자리다.
그녀는 더 이상 작은 섬—영화, 인정,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그 대신 넓은 바다를 바라본다.
그래서 찬실은 복이 많다.
그 복은 외부에서 굴러온 행운이 아니라, 무너짐 속에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용기에서 비롯된 '복'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결국 내면을 항해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긴 항해 끝에서 찬실이 만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라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