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론과 쾌락주의를 넘어 존재의 리듬으로
1. 흐름이 멈춘 재즈, 한 사람의 절규
문득, 삶의 리듬이 멈춘 듯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마치 잘 조율된 재즈가 갑자기 끊긴 것처럼 모든 의욕과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바로 그 문턱에 서 있는 인물이다. 평생을 바쳐 꿈꿔온 재즈 뮤지션의 무대에 서기 직전, 그는 하수구에 빠져 영혼 상태로 ‘그레이트 비욘드’에 끌려간다.
“아직 아니야. 나는 내 삶을 시작도 못 했어!”
조의 절규는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 바라보며 달려온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고백이다.
조의 삶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eleology)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형태였다. 조에게는 재즈 뮤지션이라는 '목적'만이 유일한 '가치'였다. 꿈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어야 했지만, 조에게 나침반은 오히려 주변 세계를 가려버린 좁은 시야의 안경이 되어버렸다. 학생과의 교감, 피아노를 치는 기쁨, 뉴욕 거리의 활기......이미 손안에 있었던 '살아가는 기쁨'은 그의 시야에서 아예 지워져 있었다.
2. 향기마저 잃어버린 영혼 22의 공허함
영혼들의 세계에서 조는 희대의 문제적 영혼 '22'를 만난다. 22는 마더 테레사, 링컨 등 수 많은 멘토가 포기한 영혼이다. 22는 지구에 가기 위한 조건인 '불꽃(Spark)'을 단 한 번도 찾지 못했다. 사는 이유도, 재미도, 흥미도 없다. 삶에 대한 냉소와 공허함만이 가득한 22의 모습은 에피쿠로스적 쾌락주의의 공백을 상징한다. 22는 그 어떤 쾌락이나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감각의 마비' 상태다. 삶이 주는 순간적인 '향기'마저 맡을 수 없는 영혼이다.
"살 준비가 안 된 영혼은 어떻게 해야 하죠?"
22의 질문은 현대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함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목표만을 좇아 '사는 기쁨'을 놓친 조와, 그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는 22. 이 두 극단은 서로에게 결핍을 비추며 묻는다. 삶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무엇인가? 영화는 목적도, 쾌락도 그 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3. 조연들이 보여준 삶의 '결'과 '온도'
영화는 두 조연을 통해 삶의 빈 공간을 채우는 또 다른 축들을 보여준다.
먼저, 조를 영혼 세계에서 돕는 신비주의자 문샤먼. 그는 허름한 홍보차를 몰고 다니지만 스피너를 돌리는 순간 완전한 ‘몰입(Flow)’ 상태에 들어간다.
“무아지경은 즐겁지. 하지만 즐거움이 집착이 되면 삶과 단절되는 거야.”
이 역설은 쾌락주의가 '중독'으로 변질될 때, 결국 삶을 '소진'시키고 고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인물, 이발사 데즈는 조가 완전히 무시했던 일상의 축을 보여준다.
조는 그가 원래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사실을 듣고 안타까워하지만, 데즈는 담담히 말한다.
“인생이 꼭 계획한 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 그래도 난 좋아.”
데즈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행복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관계의 따뜻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상의 순간들. 그는 목적은 나침반일 뿐, 행복은 길 위의 얼굴들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4. ‘불꽃’은 삶아 있음의 감각 그 자체
조의 몸에 들어가 지구 체험을 하게 된 22는 처음으로 '삶의 향기'를 느낀다. 뉴욕 거리를 걷다 발에 채이는 단풍잎의 선명한 붉은색,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한 조각 베어 문 피자의 따뜻하고 고소한 맛, 바람이 스치는 감각, 누군가의 손길. 조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던 일상들이 22에게는 삶을 처음 만져보는 경이로운 감각이었다.
22가 주머니에 넣어두던 작은 조각들은 성취의 상징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의 첫 떨림이었다.
불꽃(Spark)이란 거창한 인생의 미션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고 싶다'는 미세한 의지, '작은 기쁨'을 포착하는 감각이다. 이 작은 불꽃이야말로 삶이 시작되는 진짜 출발점이다.
5. 목적지에 도착한 후의 공허함
조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재즈 무대에 선다. 완벽한 연주,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모든 것이 꿈에 그리던 절정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 그는 깊은 공허함을 느끼며 유명 연주자에게 묻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연주자의 대답은 너무나 담담하다.
“내일도 와서 또 연주하지. 매일 그래.”
이 대목은 조가 평생 동안 좇았던 목적론의 허무함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목적 자체는 나침반처럼 방향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인생이 자동으로 충족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조는 비로소 깨닫는다. '바다'를 보기 위해 평생 노를 저었지만, 자신이 밟고 있던 '물의 반짝임'은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깨달음은 재즈 음악의 본질인 '즉흥성(Improvisation)'과도 연결된다. 조가 고수했던 '완벽하게 짜인' 연주는 목적론적 삶이었다면, 재즈의 즉흥성은 '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삶'의 상징이다. 매 순간의 리듬과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조가 배워야 했던 삶의 방식이었다.
6. 결론. 당신의 불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22를 떠나보내며 조는 말한다.
“불꽃은 네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야. 네가 살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채워질 거야.”
새로운 삶을 얻어 지구로 돌아온 조의 다짐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하다.
“매 순간을 즐겨보려구요.”
꿈을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꿈이 흐르는 현재의 결을 더 이상 놓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목적이라는 나침반을 놓지 않으면서도, 쾌락의 향기만 좇지 않으며, 그 틈새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삶의 숨결—그 불꽃을 알아보겠다는 다짐이다.
영화 <소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불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답한다. "불꽃은 저 멀리 있는 거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당신이 들이쉬는 깊은 숨, 손끝을 스치는 바람, 따뜻한 커피 한 잔의 향기, 그 모든 살아 있는 순간에서 발화하는 작은 심장 박동이다."
**'소울' 메인 예고편 https://naver.me/xtbt9NF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