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あん>단팥 속에서 마주한 ‘너’

마틴 부버의 관계철학-소외된 사람들의 '관계'와 '존재'의 회복

by 느리게걷는여자

작은 단팥 가게, 한천의 김, 그리고 팥을 고르는 손끝.
카와세 나오미의 영화 <앙あん, 2015>은 거창한 사건 대신, 누군가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그 미세한 순간들을 오래 붙든다. 이 영화의 바닥에는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말이 잔잔히 흐른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부버가 말한 두 세계—‘나-그것(I-It)’과 ‘나-너(I-Thou)’—는 영화 속 세 인물, 센타로·도쿠에·와카나의 내면을 고스란히 통과한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를 ‘대상’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하지만, 삶 전체를 뒤흔든다.


1. 센타로 —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만 살아온 남자

센터로에게 단팥 가게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붙잡고 있는 생계의 수단이다.
손님은 수익, 단팥소는 제조되어야 할 제품, 하루는 그저 견뎌야 할 시간. 그의 세계는 철저히 ‘나-그것’의 세계다. 그의 빚과 굴레는 그 자신마저 '관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다. 도쿠에가 일자리를 구하러 왔을 때, 그는 말한다.

“손이 불편하신데 힘든 일입니다.”

그는 그녀의 열정도, 삶도, 존엄도 보지 않는다. 오직 ‘효율이 떨어지는 노동력’만 본다. 그는 세상과 거래할 뿐, 세상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2. 도쿠에 — ‘그것’으로 살았으나 끝내 ‘너’로 바라보는 사람

도쿠에는 오랫동안 한센인 거주 시설에서 격리된 채 살아야 했다. 사회는 그녀를 ‘위험한 대상’, ‘부정한 몸’으로 규정했다. 그 누구보다 잔혹한 ‘나-그것’의 시선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상하게도 그녀 안에는 세상을 향한 맑은 ‘나-너’의 태도가 남아 있다. 단팥을 만들며 그녀는 조용히 말한다.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어떤 바람 속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태도다. 그녀에게 단팥소는 재료가 아니라, 팥이라는 존재의 생명과 시간을 경청하고 응축해낸 결과물이다. 부버가 말한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계의 언어다. 도쿠에에게 팥도, 바람도, 사람도 모두 ‘너’다. 그 시선이 센타로의 굳은 세계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낸다.


3. 와카나 — 존재감이 희미해지던 아이가 다시 ‘너’를 배우는 순간

와카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고생이다. 세상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작아지고, 점점 말이 줄어든다. 그런 와카나가 도쿠에를 향해 묻는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웃어요?”

도쿠에는 말한다.
“살아있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


그 말은 와카나에게 처음으로 건네진 ‘관계의 언어’다. 도쿠에는 그녀에게 어떤 조언도, 해결책도 주지 않는다. 다만 “너는 있어도 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고요하게 건넬 뿐. 그 만남이 그녀의 마음을 천천히 일으켜세운다. 도쿠에가 떠난 뒤에도 와카나는 사라지지 않으며, 센타로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고, 도쿠에가 남긴 따뜻한 온기를 다음 마음으로 이어주는 사람이 된다. 부버의 말처럼, “만남은 새로운 세계를 연다.” 도쿠에의 세계는 센타로를 거쳐, 와카나에게로 흘러든다.


4. 벚꽃 아래에서, ‘너’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도쿠에가 만든 단팥을 처음 맛본 순간, 센타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짧은 침묵은 미각의 놀라움이 아니라 존재적 충격이다. 그 단팥소는 도쿠에의 삶의 방식—경청, 존중, 기다림—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센타로는 맛을 통해 처음으로 도쿠에라는 사람의 세계와 마음을 ‘존재’로 경험한다.


벚꽃 아래에서 도쿠에는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특별한 무엇이 되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짧게 피었다 지는 벚꽃처럼, 인생은 유한하지만,

누군가를 ‘너’로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마음속에서 오래 피어난다.


5. 관계가 남긴 새로운 길

도쿠에는 결국 세상을 떠나지만, 남겨진 편지 한 장이 센타로의 삶을 다시 열어젖힌다.

“지난밤엔 바람이 사장님에게 연락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했어요.
사장님은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낼 거예요.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후 센타로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단팥을 만든다. 팥을 씻는 물소리, 김이 오르는 순간, 손끝의 온도 하나하나를 느끼며 만든다. 그에게 팥은 더 이상 ‘재료’가 아니라 '존재'이며, 도쿠에가 남긴 '만남'의 방식이다. 도쿠에라는 ‘너’를 경험한 순간부터, 그는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결론 — <앙あん>단팥 속에서 마주한 ‘너’

도쿠에는 마지막에 이렇게 남긴다.

“살아줘서 고마웠어요.”


이 말은 부버의 철학이 향하는 자리와 맞닿아 있다.

누군가가 무엇을 해주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다는 마음.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삶을 바꾸는 건 꼭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를 움직이는 건,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가 살며시 따뜻해지는 그 찰나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너’로, 그리고 자신을 다시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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