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리Tully> 나도 우리를 사랑해

당신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쳤을 뿐이다

by 느리게걷는여자

2시의 유축기와 4시의 쓰레기차, 육아로 사라져가던 ‘나’의 시간들

신생아를 키우던 시절, 나의 밤은 늘 윙윙거리는 유축기 소리로 시작되어 멀리서 들려오는 쓰레기차 소리로 끝이 났다. 피부는 탄력을 잃고, 젖을 짤 때마다 인간이 아닌 젖소가 된 듯한 기이한 비애감이 몰려왔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의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수면 부족은 영혼을 갉아먹었다. 긴 새벽의 끝, 쓰레기차가 골목을 지나갈 때쯤에야 아기는 잠이 들었고, 나는 하룻밤만이라도 푹 자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품은 채 짧은 가사 상태에 빠지곤 했다.


영화 〈튤리〉는 이 기억을 스크린 위로 조용히 불러낸다. 영화는 만삭의 몸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를로(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출산 후 그녀의 일상은 피로감으로 가득한 의무로 가득 채워져있다. 신발 하나 제 손으로 못 찾는 첫째, 예민함으로 무장한 둘째, 밤낮없이 우는 막내 사이에서 마를로는 서서히 마모된다. 남편 드류는 바깥일에는 유능하지만 가사일에는 무능하다. 그는 아내가 만삭이지만 태어날 아이의 성별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퇴근 후 헤드셋을 쓰고 게임 속으로 도망치는 그가 누리는 ‘평온’은 사실 마를로의 헌신을 연료로 타오르는 위태로운 평화였다.


리,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지옥 같은 일상에 야간 보모 튤리(맥켄지 데이비스)가 찾아온다. 튤리는 지혜롭고 따뜻하며, 무엇보다 마를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가치를 어떤 조건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라 명명했다. 툴리는 이 개념의 화신과도 같다. 그녀는 지저분한 거실이나 마를로의 짜증을 비판하지 않고 그저 그 곁에 머문다.


툴리: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고치려고만 들죠. 하지만 당신은 고장 나지 않았어요.

마를로: 난 꼭... 모르겠어, 버려진 휴대폰 같아.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는 그런 거...

툴리: 당신은 그냥... 그냥 지친 거예요.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 것뿐이죠. 이건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에요.


툴리가 건네는 말은, ‘완벽한 엄마’라는 가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스스로를 '고장 난 존재'로 여기던 마를로가 자기 자신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툴리는 단순한 ‘보모’가 아니다. 그녀는 마를로가 자기 자신에게 끝내 허락하지 못했던 태도들의 총합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정, 쉬어도 된다는 허락,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수용. 마를로는 ‘완벽한 엄마’라는 가면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고, 툴리는 그 가면이 잠시 벗겨진 자리에서, 마를로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마를로는 자기 호흡으로 살아가던 감각을 다시 떠올리며, 서서히 생동감을 되찾아 간다.


영화의 후반, 툴리는 떠나가면서 말한다.

“지금 당신이 지켜내고 있는 이 단조로움은 선물이에요.”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잔인하기도 하다. 이 집의 단조로운 평화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속적인 헌신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툴리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극도의 과로와 수면 부족 속에서 마를로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새벽의 부엌, 정리되지 않은 식탁, 자기 자신을 돌볼 틈조차 없이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육아의 시간들. 툴리는 마를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잠시 허락했던 얼굴이었다.


인어의 목소리를 되찾는 법— “나도 우리를 사랑해”

영화에는 물속을 유영하는 인어공주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팔아 다리를 얻고, 침묵 속에서 사랑을 견뎌야 했던 인어는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지워온 마를로의 또 다른 얼굴이다.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참고 견디는 쪽을 택해온 삶. 마를로는 툴리에게 고백한다.

“차라리 못다 이룬 꿈이라도 있었다면 세상을 미워했을 텐데… 나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어요.”


음주운전 사고 이후, 정신과 의사는 마를로가 극단적 수면부족과 과로상태에 놓여있었다고 남편 드류에게 말한다. 그제야 남편 드류는 그녀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그리고 그동안의 가정이 얼마나 철저히 마를로의 헌신 위에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알아차린다. 그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마를로에게 고백한다.

“나는 우리를 사랑해.”
마를로는 잠시 멈춘 뒤 대답한다.
“나도 우리를 사랑해.”

이 사랑은 로맨틱하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성숙할 수는 없다. 이는 상대를 이상화하는 사랑이 아니라,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단조로운 일상의 무게를 비로소 함께 바라보는 사랑이다. 누군가의 헌신 위에 놓여 있던 평화를, 처음으로 나란히 바라보는 순간이다.


회복은 다시 ‘나’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튤리〉는 육아의 고단함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돌봄의 대상은 언제부터 자기 자신에서 소외되었는가'를 묻고 있다. 마를로가 튤리를 통해 얻은 것은 더 나은 육아 기술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자기 허락과 오래 미뤄두었던 "자기돌봄"의 감각이었다.


회복은 더 강해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회복은 자기 자신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그 첫 시선에서 시작된다. 새벽 4시, 쓰레기차 소리를 들으며 절망했던 나의 기억과 영화 속 마를로의 환상은 그렇게 겹쳐진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각자의 ‘튤리’를 기다리거나, 만들어내며 버틴다.

마침내 튤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마를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보는 시선의 온도가 아주 조금 따뜻해진 것.
그것이 〈튤리〉가 끝내 도달한 가장 조용하고도 눈부신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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