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Click>시간을 건너뛰고 싶은 당신에게

– '클릭'과 파우스트, '지금'을 건너뛴 삶의 얼굴

by 느리게걷는여자

1. 효율성이라는 환상: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우리는 종종 삶이 너무 느리다고 불평한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허비되는 출근 시간, 반복되는 육아의 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어딘가'로 빨리 이동하기를 갈망한다. 아담 샌들러 주연의 영화 〈클릭〉에 등장하는 '만능 리모컨'은 그런 우리의 조급한 욕망을 정확히 겨냥한다. 번거로운 대화는 '음소거'하고, 지루한 과정은 '빨리 감기'하며, 고통스러운 순간은 아예 '건너뛰기' 하는 삶. 만약 우리가 삶을 이토록 효율적으로 편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2. '나중에'라는 환상

건축가 마이클은 스스로를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 믿는다. 그가 정의하는 책임이란 가족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다. 그는 현재의 부재를 미래의 보상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바쁘지만 언젠가는, 오늘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리모컨은 그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이 ‘나중에’를 기술적으로 완성시킨다.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아이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승진을 위해 아내와의 대화를 생략한다. 그에게 삶이란 정복해야 할 과업의 연속일 뿐이다. 갈등의 순간마다 그는 늘 '사회적 성공'을 선택하며 속삭인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보상할게. 오늘이 아니라 언젠가 행복하게 해 줄게." 리모컨은 그가 반복해온 이 '미루기'를 기술적으로 완성해주는 도구가 된다.


3. 소실된 풍경: '함께함'을 아낀 대가

그러나 삶은 우리가 생략한 순간들을 조용히 기억한다. 자동 학습 기능은 마이클이 귀찮아했던 모든 장면을 저장해두었다가 한꺼번에 건너뛴다. 아이들과의 캠핑, 가족과의 식사, 감기 기운으로 골골대던 날들, 아내와의 말다툼을 기억했다가 가차 없이 시간을 뛰어넘어 버린다. 마이클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그토록 원하던 대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가 아꼈던 삶의 풍경은 통째로 소실된 상태였다. 아내는 다른 남자의 곁에 있고, 품 안의 아이들은 어느새 어색하고 낯선 성인이 되어있다.


가장 시린 장면은 마이클이 '과거 보기' 기능을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을 다시 마주할 때다. 생전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무실을 찾아와 서툰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남자들끼리만 밤을 보내자"고 데이트를 신청한다. 하지만 화면 속 마이클은 작업에만 파묻혀 아버지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 자신을 방해하는 아버지가 짜증 난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며 매몰차게 돌려보낸다. "사랑한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조차 일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박제가 된 아버지의 슬픈 표정을 어루만지는 마이클의 회한은,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준다.


4. 파우스트와 Click: 현재를 통과하지 않는 삶의 허무

이 지점에서 〈클릭〉은 고전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파우스트가 삶의 근원적 충만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걸고 현재를 초월하려 했다면, 마이클은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현재를 삭제했다. 두 비극은 본질적으로 닮았다. '지금'을 통과하지 않은 삶은 결국 내부에서부터 텅 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거창한 담론 대신 사적이고 구체적인 윤리를 택한다. 세계를 구원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만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와 목소리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다.


이 영화가 아프게 다가오는 지점은 그것이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가장의 무게’를 명목으로 스스로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통장 잔고로 마음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곁에 있는 이들의 정서적 허기를 외면하곤 한다. 우리에게 마법의 리모컨은 없지만, 스마트폰 화면 뒤로 숨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대화를 단절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일상적인 ‘건너뛰기’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최선이라고 믿고 있던 방법이 아무에게도 행복을 주지 않고 있다면, 그때야말로 멈추기 버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5. 사랑의 속도: 느림 속에만 깃드는 진실

삶의 의미는 사회적 인정의 총합이 아니라, 서툴고 느리더라도 함께 머물며 부대낀 시간의 질에 있다. 성공은 훗날 결과로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관계와 사랑은 오직 '지금'이라는 찰나에 '너와 나'의 사이에만 존재한다. 〈클릭〉이 꿈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아직 손을 잡을 시간이 남아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결코 빨리 감기를 할 수 없다. 다행히도, 사랑은 느림 속에서 깃든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볼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 멈춤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의 얼굴을 지나쳐 오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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