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 아웃>주류사회의 구경거리-내 인생의 구경꾼

21세기 잔혹 동화: 현대인의 '하얀 가면'

by 느리게걷는여자

1. 숲속의 '과자의 집'에 초대된 나그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 유혹과 포식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유혹과 약탈에 관한 기록이다. 숲속을 헤매던 남매에게 나타난 '과자의 집'은 달콤한 구원이었지만, 그 실체는 마녀가 쳐놓은 치밀한 '미끼'였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겟 아웃Get Out>은 이 고전적 구도를 현대의 계급 사회 안으로 절묘하게 소환한다. 흑인 청년 크리스는 여자친구 로즈의 집, 즉 현대판 '과자의 집'에 초대받는다. 같은 흑인이자 크리스의 절친 로드는 "백인 여자친구 부모님 댁엔 절대 가면 안 된다"며 흑인 사회의 오랜 역사적 공포가 담긴 경고를 던진다.

그러나 "그들은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여자친구 로즈의 속삭임과 그녀의 가족이 보이는 친절은 그 모든 직감을 마비시키는 마녀의 사탕발림이 된다. 마녀가 아이의 손가락을 만져보며 살이 쪘는지 확인하듯, 평화로운 정원에서 열린 백인 상류층의 파티에 모인 이웃들은 크리스의 근육을 만지고 외모를 품평하며 그가 '최상품 매물'인지 확인한다. "요즘은 흑인이 대세지"라는 그들의 찬사는 환대가 아니라, 곧 잡아먹을 식재료를 향한 포식자의 식탐과 다를바 없었다.


2. 주류 사회의 구경거리: 검은 피부에 덧씌워진 '하얀 가면'과 주체성의 강탈

이 기괴한 유인극의 밑바닥에는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통찰이 흐른다. 파농은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통해 지배자의 문화를 선망하며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피식민자의 비극을 분석했다. 영화는 이 개념을 더욱 잔인하게 변주한다. 로즈의 어머니이자 최면술사인 '미시'는 찻잔을 은숟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로 크리스를 무력화시킨다. 이 소리는 단순한 최면 기법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을 다루기 쉬운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대상화'의 공정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크리스의 과거 트라우마를 헤집으며 그의 의식을 깊은 심연으로 몰아넣는다. "가라앉아"라는 미시의 명령과 함께 크리스는 '선큰 플레이스(Sunken Place)'라 불리는 심연으로 추락한다. 이곳은 육체의 주권을 빼앗긴 자아의 유배지다. 자아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처박힌 채, 저 멀리 TV 화면처럼 작아진 자신의 눈(안구)을 통해 밖을 내다볼 뿐이다. 내 몸이 타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이 공간은 파농이 경고했던 '자기 소외'의 극단적 시각화이자, 인간이 주류 사회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정점이다.


3. 약탈당한 '시선': 사진작가에서 피사체로

특히 크리스의 직업이 사진작가라는 점은 이 비극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사진가는 세상을 포착하는 '주체'이지만, 이 백인 주류의 파티에서 크리스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고 박제되는 피사체로 전락한다.

파티 뒤편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던 기괴한 '빙고 게임'은 사실 크리스의 몸을 팔고 사는 잔인한 경매장이었으며, 여기서 그를 낙찰받은 이는 눈먼 백인 미술 중개인 '짐 허드슨'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크리스의 육체 그 자체보다 세상을 포착하는 크리스의 심미안이었다. 이는 소수자가 가진 고유한 감각과 시선마저 약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주류 사회의 탐욕스러운 문화적 전유를 상징한다. 주체적인 예술가였던 크리스는 그렇게 타인의 욕망을 위해 세상을 대신 바라봐주는 '살아있는 카메라'가 될 위기에 처한다.


4. 침잠의 방(Sunken Place)에서 구경꾼으로 사는 삶

이 수술의 가장 끔찍한 진실은 자아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통제권은 이식된 백인의 뇌가 가져가지만, 원래의 의식은 '침잠의 방'에 박제된 채 남겨진다. 그는 이제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니라, 자기 삶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구경꾼'이 된다.

프란츠 파농이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구경꾼이 된다"고 말했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는 지배 계층의 시선이 내면에 침투해 주인 노릇을 하면서, 정작 실제 주인공인 '나'는 내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게 되는 분열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되어 나를 갉아먹을 때,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빈 껍데기만 남은 이방인이 된다.


5. 현대인의 '하얀 가면'

이 영화가 흑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우리 역시 일상에서 자신만의 '하얀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과자의 집'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미끼를 던진다. SNS에서 타인이 기대하는 행복한 모습이라는 가면을 쓰고, 정작 진짜 내 고통은 깊은 구멍 속에 가라앉혀 둔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기보다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트렌드에 의식을 맡긴 채 인생을 관조하는 '관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직의 이익을 위해 개성을 지우고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는 순간, 우리 역시 크리스처럼 자신의 몸을 시스템에 내어준 채 침묵하는 상태가 되는 건 아닌가. 결국 현대인의 하얀 가면은 '나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답'에 나를 끼워 맞추는 행위이다.


6. 에필로그: '찻잔의 소리'깨뜨릴 용기

영화 후반부, 크리스는 최면 소리를 막기 위해 안락의자의 솜을 파내어 귀를 막는다. 과거 흑인들을 억압했던 노동의 상징인 목화(Cotton)가, 역설적으로 백인의 지배로부터 그의 정신을 지켜내는 방패가 된 것이다.

마침내 그가 자신을 가두게 했던 최면의 도구인 찻잔을 박살 낼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규정이라는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자유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열쇠 내놔, 로즈"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구경꾼이 비로소 자기 삶의 주권을 되찾는 순간의 선언이었다.

당신을 가두고 있는 찻잔 소리는 무엇인가. 그 찻잔을 깨뜨릴 용기가 당신에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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