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남자와 트라우마 기억을 지닌 여자의 사랑
1. 비난 없는 포옹, 회복이 시작되는 자리
미셸 프랑코의 〈메모리〉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시작한다. 그곳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흐르는 심리적 포옹의 공간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이 모임은 실비아가 세상과 맺고 있는 유일하고도 건강한 끈이다. 실비아는 이 연대의 힘으로 술을 끊었고, 이제는 성인 보호 시설에서 취약계층의 일상을 돌보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타인을 돌보는 그녀의 손길과 달리, 정작 자신의 내면은 유년기의 성학대 기억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녀에게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잠식하는 형벌과도 같다.
2. 기억의 폭력과 무해한 존재의 등장
그런 그녀 앞에 사울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울은 실비아를 집까지 쫓아오고, 실비아는 공포 속에 그를 과거의 가해자로 오인한다. 다음 날 집 앞에 쓰러져 있던 사울을 발견한 실비아는 그가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사울을 낯선 길 위에 홀로 남겨두어 길을 잃게 만드는데, 이 장면은 단순한 복수라기보다 상처 입은 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뱉는 비명에 가깝다. 기억은 때로 진실을 가려내기보다 생존을 위해 날카로운 가시를 먼저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오해는 역설적으로 두 사람을 잇는 통로가 된다. 실비아가 사울의 개인 돌봄을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의 시간은 천천히 겹쳐지기 시작한다.
3. 무해한 시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사랑
이 영화의 중심축은 사울이 실비아를 바라보는 '무해한 시선'에 있다. 사울은 실비아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과거를 설명하라고 재촉하지도, 고통을 이해한다며 섣불리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그는 실비아를 치료해야 할 대상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그저 한 사람의 존재로 마주한다. 마틴 부버가 말한 ‘나-너’의 관계처럼, 사울은 그녀를 평가의 도마 위에 올리지 않고 소중한 존재 그 자체로 응시한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하지 않기에 그녀의 공간을 침범하지도 않는다. 사울의 텅 빈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실비아가 생애 처음으로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무해한 품이 된다.
4. 욕조 속의 정화, 안전하다는 감각
실비아는 오랜 시간 어머니와 단절한 채 살아왔다. 여전히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통을 호소할 만큼 그녀의 내면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린 시절 가족 내에서 성학대를 당해왔음에도, 가족의 은폐 속에 실비아는 그저 희생양으로 남겨져 트라우마를 문신처럼 온몸에 새겨왔던 것이다. 마침내 용기 내어 진실을 폭로했음에도, 가정을 지키려는 방어기제에 함몰된 어머니에게 다시 한번 거짓말쟁이라며 처참히 부정당한다.
그 길로 실비아는 욕실에서 알몸으로 무너져 내린다. 평생 자신의 몸을 수치와 공포의 감옥으로 여겨왔던 그녀에게 그 울음은 존재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같다. 그때 사울이 다가온다. 그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 그저 그녀를 안아주려던 마음이 앞서 옷을 입은 채 욕조로 함께 빠져버리고 만다. 첨벙이는 물소리와 함께 온몸이 젖어버린 두 사람 사이에서 실비아는 비로소 울음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은 상처가 다 나았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무해한 타인의 신체적 현존’ 앞에서 긴장을 내려놓는 안도의 숨이다. 사울은 묻지 않았고 해결하려 들지 않았으며, 그저 그녀가 울고 있는 슬픔 속으로 기꺼이 함께 젖어 들었을 뿐이다. 이 서툰 사고는 그 어떤 세련된 언어보다 정확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 실비아의 영혼을 닦아준다. 깊은 상처는 말로 위로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해치지 않는 누군가와 슬픔 속에 나란히 머무는 '감각'으로 치유되기 시작한다.
5. 딸이 건네는 희망의 매개
사울의 동생은 사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실비아를 밀어내지만, 두 사람을 다시 잇는 것은 실비아의 딸이다. 딸은 엄마가 사울의 무해한 시선 안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딸은 엄마의 상처를 목격하고도 도망치지 않았으며, 사울을 엄마에게 다시 데려옴으로써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희망의 매개자가 된다. 사랑은 기억의 축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상대의 곁을 지키겠다는 의지임을 딸의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6. 위로란 곁에 머무는 일의 다른 이름
마지막 장면에서 실비아는 묻는다. “여기 어떻게 왔어?”
사울은 해맑게 대답한다. “몰라.”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의 감각은 실비아를 향한 끌림을 멈추지 않는다.
〈메모리〉는 상처를 단번에 고치는 기적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나지막이 묻는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쩌면 상처입은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란, 그 고통을 설명하거나 해결해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울이 그러했듯, 판단 없이 그저 바라봐 주고,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른 채 상대의 슬픔 속으로 함께 머무는 일이다. 타인을 향한 '무해한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형태의 위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