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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이기심과 빈곤한 상상력

by 느리게걷는여자

2016. 7. 20. 몹시 더움

오전 운동을 하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상태에서 확인 된 한 통의 부재중 전화. 아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부터였다. 좋지 않은 징조이다. 경험 상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는 일은 뭔가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였다. 작년 이맘때엔 야외 활동 중 아들 손가락이 벌에 쏘여 퉁퉁 부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그래도 별일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회신을 드렸다. 연유인즉 아들이 오전 간식으로 나오는 죽을 잘 못 먹길래 살펴봤더니 입안에 수포가 발견되었고 손바닥에도 수포가 잡힐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수족구(hand-foot-and-mouth disease)인거 같다고 하셨다.

입 안, 손, 발에 수포가 생기고 심할 경우엔 수포가 온몸으로 번지기도 하며 고열이 나고 입 안이 아파서 음식을 먹지도 못한다는 말로만 듣던 그 수족구라니! 자식 아픈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전염성까지 강하니 수족구는 엄마들 사이에서 공포의 질병 중 하나이다.

일주일 전, 우리 동네에 자주 놀러오던 7살 형아가 뒤늦게 수족구인게 발견되어 놀이터 엄마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의 제보에 따르면,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와 함께 나온 그 형아와 놀고 있었는데 손바닥에 수포가 발견되었는지 급히 그 형아의 엄마가 와서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아이 걱정보다는, 그 아이와 함께 놀던 '내 아이'에게 전염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아이를 잘 체크하지 않고 놀이터에 내보낸 부주의한 그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고개를 쑥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수족구에 걸린 건 '내 아이'가 되었고, 아이를 잘 체크하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낸 부주의한 엄마는 '내'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놀이터 그 형아를 민폐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거 같다. 이젠 내 아이가 존재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민폐의 대상이 되고나니, 비로소 그 아이와 그 엄마의 처지가 이해되는 거 같다.

입장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게 되는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거 같기도 하고,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엔 참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타인의 고통과 아픔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인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만 생각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빈곤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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